가계와 기업의 차입금이 지난해 각각 100조원 이상 늘었다는 어제 한국은행 발표는 우리 경제가 얼마나 빚더미에 빠져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은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작년 말 은행권 대출 잔액은 가계가 988조8000억원, 기업은 976조4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각각 100조5000억원, 107조4000억원 증가했다. 연간 증가폭으론 집계를 시작한 2009년 이후 최대다. 가계는 폭등한 집값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뜨거워진 증시에 ‘빚투(빚내서 주식투자)’를 한 게 주요인이다. 기업도 코로나 위기를 견디기 위해 빚을 늘렸다는 분석이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속화하는 ‘K자 양극화’의 단면이기도 하다. 부동산과 주식 등을 가진 가계와 일부 혁신·수출기업 등은 자산과 매출이 늘어난 반면 자산이 적은 가계와 전통·내수기업 등은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빚으로 버틴 것이다. 실제 계층 간 자산 격차를 보여주는 순자산 5분위 배율은 지난해 3월 166.64배로, 2019년(125.60배)에 비해 껑충 뛰었다. 이 배율은 상위 20%(5분위) 가구의 평균 순자산을 하위 20%(1분위)의 평균 순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수치가 클수록 자산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뜻이다.
날로 심화되는 계층·부문 간 양극화는 우리 경제의 구조를 취약하게 하는 요인이다. ‘유동성 파티’로 코스피지수가 3000선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증시는 사상 최대 호황이지만 경제의 뿌리와 기반이 허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 부채마저 급증하고 있어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중앙정부 채무는 작년 11월 말 기준 826조2000억원으로 전월보다 13조4000억원이나 늘었다. 전년 말 대비 127조3000억원 급증한 것이다. 경기위축 속에 국세 수입은 주는데 재난지원금 등 지출은 늘어 재정적자가 쌓인 탓이다. 재정건전성 악화는 위기 대처능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한국은행의 비상한 대응이 필요한 때다. 정부는 거시적 안목에서 신용팽창과 자산인플레에 따른 실물과 금융시장 간 괴리가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면밀히 대처해야 한다. 한은도 정부에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임기응변식 대증요법에 치중할 때도 한은이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양극화와 불균형 속에선 경제 펀더멘털도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부와 한은은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