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애호가들이 퍽 기대하던 무대였다. 베토벤 전문가가 지휘하는 베토벤 교향곡을 들을 수 있어서였다. 지난 1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음악회 ‘김선욱&KBS교향악단’에서 피아니스트 김선욱(사진)이 지휘자로 변신했다.
전날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를 연주해 호평받았던 김선욱은 지휘 데뷔 무대에서도 베토벤을 골랐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교향곡 7번’을 지휘했다. 과감한 선곡이었다. 초보 지휘자는 대체로 교향곡 7번을 데뷔 무대에 올리지 않는다. 나성인 음악평론가는 “교향곡 7번은 구성이 치밀하고 4악장 내내 선율을 균형 있고 세밀하게 끌고 가야 하는데 패기 넘치는 선곡이었다”고 설명했다.
출발은 산뜻했다. 무대 가운데에 지휘대 대신 피아노를 뒀다. 객석을 등지고 건반 앞에 앉은 김선욱은 연주와 지휘를 동시에 해냈다.
평론가들은 1부 피아노 협주곡 2번에 대해 호평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에 대해 황장원 평론가는 “참 영민한 연주였다. 피아노 독주에서 합주로 넘어가는 지점이 다소 흔들렸지만 템포를 조절함으로써 지루함을 깼다”고 평했다.
본 무대인 교향곡 7번은 개성 있게 해석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강점이 지휘에서도 드러났다. 4악장 내내 강세를 밀고 당기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음량을 서서히 키우는 크레셴도가 돋보였다. 황 평론가는 “템포 조율이 탁월했다. 20세기 초 거장들이 보여줬던 해석에 가깝다”고 했다. 또 “금관악기를 숨죽여 연주하다 4악장 클라이맥스에서 터뜨린 점도 독특했다”며 “최근엔 보기 드문 해석이다. 선율에 깊은 무게감을 주는 점도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록이 부족했다. 리허설 기간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장악하지 못한 탓일까. 3악장부터 관악주자와 현악4부 사이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한쪽 음량이 너무 커 다른 성부가 묻히기도 했다. 나 평론가는 “3악장부터 리듬이 무너졌다. 단원들 호흡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첫 지휘 치고는 준수한 공연이었다는 평가다. 짧은 리허설 기간, 전문 지휘자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