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금 유예 끝나자 밀린 것까지 갚으라니"…자영업자 '분통'

입력 2021-01-12 17:38
수정 2021-01-13 01:37
얼마 전 서울에서 실내 축구 교실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로부터 메일이 한 통 왔다. 대출 원금·이자 유예 조치를 한 차례 받은 이후 상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상가를 담보로 약 1억5000만원의 대출(원리금 상환 방식)을 받았던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출이 끊기자 매달 330만원의 원리금을 낼 길이 없었다. 유예 조치를 받아 한숨을 돌렸다.

문제는 이후에 터졌다. 작년 9월 말 2차 유예를 신청하지 않은 그는 이전과 같은 원리금을 내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6개월 유예해 줬으니 남은 6개월 동안 1년치 원리금을 몰아 갚으라”고 요구했다. 한 달에 660만원에 달하는 원리금 ‘폭탄’을 받아든 것이다.

그는 다른 지방은행의 소상공인 대출(2000만원)을 받아 세 달치 원리금을 냈다. 그는 “원리금을 몰아 갚아야 하는줄 알았더라면 유예를 계속 신청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취약층을 돕기 위한 은행권의 원금·이자 유예 조치가 결국에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온 사례다. 유예 이후 대출금 상환 방식이 은행별로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유예 이후 가이드라인은 ‘원리금을 일시 납부하거나 분할 납부한다’로만 정해져 있다. 이 때문에 은행이 밀린 원리금을 몰아 갚으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없는 셈이다. 1차(작년 3월 말) 유예자의 대부분이 2차 유예 조치(9월 말)를 받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부작용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 같은 사례는 앞으로도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얘기는 다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유예를 신청하지 않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신청해 만기 연장을 받을 수 있다”며 “은행이 이를 고지하지 않았다면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상환 방식이 은행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은행별로 리스크 관리를 하기 때문에 통일하지 않고 자율 결정하도록 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일이 단순 해프닝일 뿐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유예 조치가 오는 3월 또 연장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연장이 종료되면 A씨와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가이드라인 위반 사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소상공인 긴급 대출을 시작했을 때도 일선 은행 지점에서 ‘꺾기’ 등의 부적절한 관행이 있었다”며 “당국의 지침이 무조건 다 지켜질 것이라고 맹신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유예 조치 종료 이후 ‘대출금 폭탄’ 같은 혼란을 막으려면 은행은 유예 종료 이후 상환 방법에 대해 미리 차주들에게 고지하고, 금융당국은 이를 철저히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다.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