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에 돌가루 입혀 자신의 이야기 풀어 내죠

입력 2021-01-11 17:41
수정 2021-01-12 00:29
표면을 거칠게 가공한 비단을 전통 방식으로 쑨 풀로 틀에 고정시킨다. 그 위에 먹으로 세밀하게 스케치하고 색깔 있는 돌가루를 입힌다. 금박으로 화려함을 더하기도 하고 세밀한 필치로 정교한 묘사를 선보이기도 한다. 고려시대 불화와 조선시대 궁궐 장식, 초상화로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 채색화 ‘진채’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이즈에서 전시 중인 진채연구소의 세화전(歲畵展) ‘괜찮-소?! OK-SO?!’는 신축년 소띠 해를 맞아 진채로 건네는 새해 인사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은 새해 아침에 대문이나 집안에 특별한 의미의 그림을 붙이곤 했다. 악귀나 잡귀 등 나쁜 기운을 쫓고 좋은 기운과 복을 불러들이는 이 그림을 ‘세화’라고 불렀다. 새해 초가 되면 왕이 신하들에게 장수나 부귀를 기원하는 세화를 내렸는데 이를 위해 화공들이 밤새워 작업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이번 전시에는 70여 명의 작가가 자신의 염원을 비단 위에 진채 기법으로 담아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통기법이라는 설명이 무색할 만큼 화풍이 다양하다.

진채연구소에서 진채를 배운 아마추어들의 작품이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광화문 앞에 펼쳐진 만국기 위에 온몸을 마스크로 감싼 채 우뚝 선 소는 코로나19가 진정돼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다는 희망을 담았다. 소가죽으로 만든 명품 핸드백을 세밀하고 우아하게 그린 장주원의 ‘나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는 통념의 허를 찌른다. 우아한 그림 아래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당신은 나에게 노동을 강요하고, 젖을 빼앗고, 아이와 이별하게 만들고, 나를 죽여 그 살을 먹고 이제는 나의 영혼으로 욕망마저 채우려 한다.”

정해진 진채연구소 소장은 “코로나19로 일상이 위축돼 있지만 세화를 즐기며 함께 새해 희망을 기원하기 위해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8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