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비겁하고 부끄러운 백신 논란

입력 2021-01-11 17:48
수정 2021-01-12 00:12
영국에서 첫 접종을 시작하고 한 달 만에 37개국의 2375만 명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았다. 그동안 정부만 믿고 있던 국민들은 뒤통수를 맞았다. 이래저래 정부의 방역대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 정부, 여당이 쏟아내는 무책임한 막말, 궤변, 실책이 절망적이다. 과학은 밀어내버리고 경제를 앞세운 어설픈 정치가 압도하는 방역에 국민이 지쳐가고 있다.

화이자, 모더나가 10개월 만에 백신 개발에 성공한 것은 기적이었다. 유전자 합성 기술을 이용한 메신저 리보핵산(mRNA) 덕분이다. 백신 개발에는 보통 10년 넘는 세월과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 백신 개발 자체도 쉽지 않지만, 일반인에게 접종할 수 있을 정도의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임상시험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경우 국경을 넘어선 국가와 기업들의 협력과 아낌없는 투자가 있었다. 미국 화이자는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손잡았고, 영국 옥스퍼드대는 스웨덴 아스트라제네카와 협력했다. 세계 최악의 감염국이 돼버린 미국 정부도 낯선 민간 전문가 몬세프 슬라위를 백악관 오퍼레이션 워프 스피드(Operation Warp Speed·백신 개발 초고속 작전)의 최고책임자로 임명하고, 기업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었다. 빌앤드멀린다게이츠 재단도 놀라운 규모의 ‘실탄’을 공급했다.

엄청난 양의 백신을 미리 확보한 선진국들도 사실은 백신 개발에 간접적으로 자금을 투자한 셈이다. 백신 확보를 위해 지급한 계약금이 기업에 유입됐다. 물론 개발에 실패하면 고스란히 포기해야 하는 돈이다. 결국 코로나19 백신의 조기 개발은 세계 선진국의 국경을 넘어선 기술·자본 협력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한국 정부 여당의 분위기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다른 나라가 기술과 자본을 대고, 임상시험까지 한 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다. 대규모 접종을 통해 효능과 부작용을 확인해주면 그제야 마지못해 구입을 시작하겠다는 요량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남들이 피땀 흘려 노력할 때는 K방역 자랑이나 늘어놓다가, 백신이 완성되면 대통령의 전화로 새치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긍지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비겁하고 불량스러운 발상이다.

세계가 힘을 합쳐 개발한 백신을 ‘백신 추정 물질’로 깎아내리고, 지금까지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을 모두 ‘마루타’로 전락시켜버린 여당 초선의원의 말본새도 절망적이고 혐오스럽다. 마루타는 동아시아의 무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제가 저질렀던 참혹한 만행의 상징이다. 현대 과학기술의 찬란한 성과인 백신을 깎아내리기 위해 함부로 들먹일 수 있는 단어가 절대 아니다.

‘백신을 1등으로 맞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질타한 보건복지부 대변인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물어보라’며 통수권자에 대한 일방적인 예우만 강요하는 총리의 화난 모습도 부끄럽다. 가망 없는 국산 백신만 기다렸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할 배짱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감염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구치소, 요양병원, 요양원을 ‘별세계의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법무부 장관이 구치소를 고층으로 짓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전 정부를 탓하는 모습은 정말 추하고 몰염치한 것이었다.

방역의 중심축인 의료체계도 흔들리고 있다. 난데없는 정부의 공공의대 논란으로 의욕을 잃어버린 의료계가 중증 감염자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10일 현재 치사율은 1.64%까지 치솟았다. 일본의 1.41%를 넘어섰고, 미국의 1.68%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세계적 추세는 정반대다. 지난 5월 초 7.2%까지 치솟았던 세계 치사율이 이제는 2.15%까지 떨어졌다. 자칫하면 역전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겨울에는 모기장이 필요없다는 궤변 때문에 전 세계 191개국으로부터 외면당했던 작년 3월의 아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매일 수십 명의 감염자가 공항을 통해 유입되고 있다. 영국에서 발생한 변이 바이러스가 며칠 만에 국내에 퍼질 정도로 활짝 열어놓은 방역으로는 국민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 얄팍한 소비쿠폰과 지원금, 원칙 없이 갈팡질팡하는 집합금지의 ‘알파’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