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한 달간 검찰에 접수된 고소·고발 건수가 5만 건을 넘어 11년 만에 최대를 기록한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접수된 고소·고발 건수는 5만545건으로, 월간 기준으로 2009년 12월(5만1561건) 이후 가장 많았다. 지난해 월평균 고소·고발 건수는 4만 건 안팎이었지만 12월에 20% 정도 급증한 것이다. 이로써 작년 전체 고소·고발은 49만5894건에 달했다. 연말 고소·고발 급증은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위반 사례가 늘었던 특수성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란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은 원래 고소·고발이 많은 나라다. 연평균 50만 건의 고소·고발은 이웃 일본과 비교하면 40배를 넘는 수준이다. 그중 사기·위증·무고 등으로 기소된 사람은 인구 대비 일본의 100배 이상이란 통계도 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고소·고발 절차가 무척 까다롭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고소·고발을 남발하는지 알 수 있다. 개인 간의 중재나 손해배상 등 민사소송으로 해결할 문제도 일단 고소·고발을 통해 상대방을 형벌로 응징하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불신이 깊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이런 고소·고발 문화의 바탕엔 ‘삿대질’을 조장하는 한국의 저질 정치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 때만 되면 ‘국민 통합’을 강조하다가도 권력을 잡으면 계층·지역·세대 간 편을 가르고 자기 편만 챙겨 지지 기반을 다지는 소아병적 정치의 뿌리가 깊다. 사회의 복잡다단한 요구와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이루는 게 정치의 본령임을 망각한 채, 되레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시킨다. 그런 정상배들은 분노와 갈등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연명한다. 저질 정치가 사회 갈등지수를 높여 고소·고발의 남발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신뢰야말로 공동체의 이익을 창출하는 사회적 자본이다. 신뢰자본의 크기와 경제성장률이 정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분열과 갈등은 개인과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고소·고발 등 불필요한 갈등 비용을 증가시켜 모두를 패자로 만들 뿐이다. 한국 사회가 더 도약하려면 상호 신뢰를 쌓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선 정치인들부터 각성하고 편가르기와 갈등 조장을 멈춰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한국은 만인이 만인을 불신하는 ‘고소·고발 공화국’이란 오명을 벗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