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가 친환경 미래 연료로 각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물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그린수소다. 그린수소는 미래 수소경제 시대의 핵심인 청정에너지원이지만 생산 단가가 높다. 아직 대부분 수소를 석유 정제 과정의 부산물로 얻거나(부생수소), 천연가스에서 추출(개질수소)하는 이유다.
물 분해로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은 크게 전기분해(수전해), 광분해, 열분해 세 가지로 나뉜다. 아직 모두 실험실 수준이다. 그나마 상용화에 가장 가까워진 건 수전해 기술이다. 수전해의 역반응을 이용해 가정, 산업, 전기차 등에 전력을 공급하는 수단이 연료전지다.
수전해는 공정 가격이 비싸고 효율이 낮아 아직 기술적 난제가 많다. 한국중부발전에 따르면 현재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는 ㎏당 생산 단가가 9000~1만원으로, 부생수소(약 2000원)보다 네 배 이상 비싸다. 매년 수천만t의 부생수소를 수입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을 수소와 산소로 전기 분해하는 것은 초·중학교에서도 실험할 정도로 기초적인 화학 반응이다. 산업에 쓸 수 있는 수전해의 관건은 촉매다. 어떤 촉매를 쓰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온다. 문제는 산소 발생 속도가 수소에 비해 매우 느리다는 점이다. 복합적인 화학반응은 가장 느리게 일어나는 한 과정이 전체 반응 속도를 결정한다. 최대한 빨리 수소를 분리하려면 산소 발생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뜻이다.
수소가 발생하는 음극(환원 전극)엔 비싼 백금 계열 촉매를 쓴다. 산소가 발생하는 양극(산화 전극)엔 루테늄 산화물, 이리듐 산화물 등을 사용한다. 백금 못지않게 비싼 촉매다. 이들 촉매는 ㎏당 7만달러가 넘는다. 화학 반응을 24시간 이상 지속하기도 어렵다.
이효영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 부연구단장은 “㎏당 가격이 3500달러 수준으로 루테늄, 이리듐 촉매보다 20분의 1가량 저렴하면서 100시간 이상 반응이 가능한 촉매를 개발했다”고 8일 말했다. 저렴한 금속인 코발트와 철, 소량의 루테늄을 혼합한 뒤 산소 원자를 부착한 신개념 촉매다.
높은 성능의 촉매를 만들기 위해선 단계별 공정이 중요하다. 전기분해 과정에서 산소는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그런데 산소가 발생하기 직전 단계의 중간체(OOH)는 화학적으로 불안정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은 촉매 표면에 미리 산소를 흡착하면 OOH를 안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표면 산소량을 조절하기 쉬운 코발트·철 합금 결정을 만들어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이 결정에 산소 원자 8개를 붙였을 때 산소 발생량이 가장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에 루테늄 원자를 붙여 OOH가 산소로 넘어갈 때 에너지 장벽을 줄이고, 이를 전기 전도도가 높은 다공성 탄소층 위에 붙였다.
이렇게 개발한 촉매는 기존 촉매 대비 산소 생산량이 약 여섯 배 많고, 더 낮은 전압으로 산소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기존 촉매인 루테늄 산화물은 ㎠당 10밀리암페어(mA)의 전류 밀도를 얻기 위해 298밀리볼트(mV)가 필요했지만 연구팀이 개발한 촉매는 루테늄 산화물의 60% 수준인 180mV면 가능했다. 낮은 전압으로 물 분해가 가능해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는 뜻이다.
이 부연구단장은 “중소기업 서너 곳에 이 기술을 이전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