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어머니처럼 품어주는 '자연 예찬'

입력 2021-01-07 17:25
수정 2021-01-08 02:44
2021년 새해 미국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에 이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약속의 땅》과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 등 자서전과 평전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올 들어 새롭게 순위권에 진입한 책은 시인 에이미 네주쿠마타틸이 선보인 첫 번째 에세이집 《경이로움의 세계(World of Wonders)》다. 미시시피대 영문학 교수인 저자는 4권의 시집으로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쉽고 담백한 어조로 자연의 신비를 노래하는 서정시는 대표적인 ‘힐링 문학’으로 손꼽히고 있다.

《경이로움의 세계》는 자연에서 발견한 삶의 지혜에 대해 소개한다.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인 나카무라 후미의 서정적이고 따뜻한 삽화가 어우러져 독자들을 경이로움의 세계로 안내한다. 반딧불이, 공작새, 봉선화, 개구리, 외뿔고래, 카라카라 오렌지, 붉은점도롱뇽 등 작가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동물과 식물 이야기를 펼쳐 놓으며, 도시화로 인간의 시선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자연 세계의 동식물을 마주하며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본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집에 있지 않을 때면 외뿔고래를 상상하곤 했다. 독특한 외형을 지닌 외뿔고래는 범고래 무리에게 공격받으면 바다 아래로 깊이 내려가 해저에서 가족을 지켜낸다. 붉은점도롱뇽은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집을 찾아 숲의 맨땅을 맴돈다. 멕시코 도롱뇽 우파루파는 불친절한 상황에서도 늘 웃을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준다. 봉선화는 원치 않는 접근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는지 알려준다.


시인다운 감수성이 묻어나는 문장은 독자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나는 압니다. 앞으로 내게 남은 날 동안에도 계속해서 반딧불이를 찾아다닐 겁니다. 반딧불이는 매년 조금씩 사라지겠죠. 하지만 반딧불이를 찾아다니는 것을 멈출 수 없을 겁니다. 반딧불이는 깜빡깜빡하며 속삭이겠죠. ‘나는 아직 여기 있어. 너도 아직 거기 있네’ ‘나는 아직 여기 있어. 너 아직 거기 있니?’ ‘나는 여기. 너는 거기’….” 작가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여름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만났던 반딧불이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지금은 어른이 돼 각자 흩어져 살고 있지만 함께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을 만들어준 반딧불이에게 감사한다.

저자에게는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많았다. 필리핀 출신 어머니가 의사로 근무했던 캔자스주의 정신병원, 인도 출신 아버지와 함께 산행했던 애리조나주의 탁 트인 하늘과 드높은 산들. 뉴욕 서부와 오하이오 지역의 추운 날씨… 어디로 이주하든, 그곳이 아무리 어색하더라도 자연을 친구 삼아 적응할 수 있었다. 자연과 함께했던 추억들은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저자는 기억을 되살려 당시의 시선으로 다시 자연을 바라본다. 그리고 사뭇 다른 얼굴로 말을 건네는 자연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머니처럼 늘 우리를 품어주고 보듬어주는 자연. 그 자연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자연은 알려주고 싶다, 우리의 진짜 모습을.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