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물방울을 통해 순간의 아름다움을 잡아낸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이 5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이다. 1929년 12월 24일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월남해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6·25전쟁 이후 작가의 즉흥적인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하는 ‘앵포르멜’ 운동을 이끌던 그는 1965년 미국으로 터전을 옮겼다. 대학 은사였던 김환기의 주선으로 4년간 뉴욕에 머물며 록펠러재단 장학금으로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1969년부터는 프랑스 파리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맑고 투명한 물방울은 그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대표 이미지다. 물방울은 1972년 파리에서 작업하던 중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밤새 그린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 유화 색채를 떼어 내고 캔버스를 재활용하려고 물을 뿌려놨는데 물이 방울져 아침 햇살에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존재의 충일감에 몸을 떨며 물방울을 만났다”고 그는 훗날 회고했다.
물방울 회화를 처음 선보인 것은 같은 해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메’전에서다. 이후 2009년 귀국할 때까지 물방울 그림을 이어갔다. 고인은 물방울을 그리는 데 대해 1988년 일본 도쿄 전시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사물을 투명하고 텅 빈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용해하는 행동이다. 나는 나의 자아를 무화시키기 위해 이런 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고인은 초기 물방울 회화에서 물방울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빛의 반사효과를 주요 요소로 활용했다. 이를 위해 바탕칠을 하지 않은 거친 마대나 모래, 나무판 등 질감이 두드러지는 재료를 사용하며 물방울을 완벽하게 담아내기 위해 제작 기법을 끊임없이 변주했다.
그는 1975년 작품 ‘피가로지’를 시작으로 문자와 물방울을 함께 배열했다. 프랑스 일간지 ‘피가로(Le Figaro)’ 1면에 수채물감으로 물방울을 그린 작품을 통해 캔버스에 환영으로만 존재하던 물방울을 현실 세계로 옮겨왔다는 찬사를 받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선보인 ‘회귀’ 연작은 물방울과 문자의 조화를 한껏 끌어올렸다. 물방울과 문자는 매번 긴장과 이완을 거듭하며 어우러진다. 물방울은 문자를 통해 그 영롱함을 극대화한다.
고인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양국의 문화교류 저변 확대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1996년)와 ‘오피시에’(2017년)를 받았다. 2013년엔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도 수훈했다. 대표작 220점을 제주도에 기증해 2016년 제주에 김창열미술관을 열었다. 제주는 고인이 6·25전쟁 당시 1년6개월 정도 머무른 인연으로 ‘제2의 고향’으로 여긴 곳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더 패스(the path)’는 고인의 생전 마지막 전시가 됐다. 고인과 유족은 지난해 서울 평창동 자택을 종로구립 미술관으로 조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마르틴 김 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등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7일이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