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리스크’에 떨고 있는 상장회사는 대한항공만이 아니다. 다른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관련 업계에선 줄잡아 100곳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처럼 지분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로 명시한 기업에 대해 3월 정기주주총회 안건에서 사안별로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다 현재 지분 보유 목적이 ‘단순투자’인 100여 개 상장기업은 1월 중순부터 ‘일반투자’로 바꿀 수도 있다. 현재 ‘단순투자’로 돼 있는 상장사는 국민연금이 ‘일반투자’로 바꾸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배당금 확대 요구, 이사 선임 반대 등에 직면할 수 있다.
5일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1월 중순부터 하순에 걸쳐 주요 투자 기업의 지분 보유 목적을 대거 변경할 전망이다. 변경한 보유 목적에 따라 주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주총 6주 전에는 보유 목적 변경 공시를 해야 하는 금융위원회 규정 때문이다.
국민연금 등 투자자들이 공시하는 지분 보유 목적은 2019년까지만 하더라도 ‘단순투자’와 ‘경영참여’ 두 가지였다. 금융위가 2019년 말 관련 제도를 바꾸면서 ‘일반투자’가 추가됐다. 투자자가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바꾸면 추가 배당 요구 등 배당정책 변경, 이사 및 감사 선임에 대한 반대 의결권 행사, 임원 보수 한도 조정, 이사회 산하 위원회 설치 요구 등 폭넓은 경영 참여가 가능해진다. 과거에는 경영참여로 보유 목적을 바꿔야 가능하던 것이 일반투자 항목 신설로 문턱이 낮아졌다.
경제단체 관계자들은 “국민연금이 2019년 말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는데 작년 초엔 준비가 부족해 보유 목적 변경이 대거 이뤄지지는 않았다”며 “올해가 국민연금이 사실상 처음으로 스튜어드십코드(의결권 행사지침)를 본격 행사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2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56개 주요 상장사의 투자 목적을 일반투자로 바꿨다. 이후 2분기에는 현대중공업 CJ제일제당 등 16개 상장사, 4분기에는 롯데하이마트 삼양식품 등 4개 상장사를 추가해 76개 기업을 일반투자로 분류해 놓고 있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가진 상장사는 200여 곳에 이른다. 단순하게 보더라도 120개 이상 상장사의 보유 목적을 바꿀 수 있다. 국민연금이 이미 일반투자로 보유 목적을 바꾼 상장사 중 금호석유 대림산업 하나금융지주 한세실업 현대백화점 KCC 등에 추가 배당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림산업 롯데케미칼 카카오 현대차 등은 이사 선임과 관련한 주주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일반투자에서 한발 더 나아가 경영참여로 보유 목적을 바꾸는 상장사도 나올 수 있다. 국민연금은 2019년 12월 ‘적극적 주주권 행사 지침’을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하며 이사 선임과 해임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 같은 적극적인 경영 참여는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에서 한 단계 올려야 가능하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이른바 ‘공정경제 3법’ 등 새로운 규제가 나타나면서 주목을 못 받고 있지만 국민연금의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상장사 사이에 높다”며 “국민과 기업이 낸 돈으로 형성된 국민연금 기금이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개별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 범위와 방향 등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노경목/황정환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