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답변을 드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16개월 정인이의 충격적인 학대정황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방송된 후 서울 양천경찰서 게시판에 국민들의 분노가 빗발치고 있다.
양천경찰서는 어린이집 선생님, 소아과 의사가 총 3차례나 정인이 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했지만 이들 신고의무자보다 정인이 양부를 더 신뢰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이 알고 싶다' 측은 양천경찰서 측은 입양관련 봉사를 해온 양부모에 대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옳지 않은 일을 했을리 없다는 편견을 가졌다"고 했다.
경찰서를 찾아온 취재진의 질문에도 "지금은 답변을 할 수 없다"고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정인이 양모는 6월 24일 돌밖에 되지 않은 정인이를 30분간 차에 방치했다가 신고를 당했다.
이때도 경찰은 신고 접수 한달 뒤에야 인근 학원에 찾아와 CCTV를 요청했지만 이미 기록은 사라진 뒤였다.
한달새 두번이나 학대신고가 접수됐지만 경찰은 학대의심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측은 학대 의심은 매번 양모가 받았지만 찾아가 해명한 건 주로 양부였다고 전했다.
정인이가 사망하기 20일 전 살릴 기회가 또 한 번 찾아왔다.
3차 신고자는 소아과 의사였다.
정인이 소아과 의사는 허벅지 안쪽 멍을 보고는 "허벅지 안쪽은 넘어진다고 멍이 드는 부위가 아니다"라며 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했다.
의사는 "그때 왔던 경찰한테 굉장히 강하게 얘기해서 당연히 분리가 됐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서야 사망소식을 들었다"고 허탈해 했다.
당시 신고 후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정인이를 또 다른 소아과로 데려가 검사했다. 알고보니 그곳은 정인이 양모의 단골병원이었다.
신고 의사는 억지로 입을 찢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던 입안 상처를 그 병원에서는 단순 구내염으로 판단했다.
지난달 종료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6개월 아이가 양부모에 의해 처참히 살해되었다"면서 "악마같은 부모는 법의 심판을 엄중히 받아야 한다"는 글이 게재되 약 13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담당 경찰이었던 양천경찰서를 비난하며 "핵심은 3번의 신고에도 경찰이, 나라가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점이다"라며 "국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경찰이 1번도 아닌 3번의 신고에도 지켜주지 못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청원인은 "주변에서 경찰에 신고해봤자 소용이 없어 신고를 못했다는 현실이 2020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믿기지가 않는다"면서 "해당 양천경찰서의 경찰은 이같은 사실을 전달 받고도 수사를 하지않고 종결했다. 뼈에 금이가고 아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며 온몸에 멍이 들었는데도 돌려보내다니...왜 긴급 분리를 시키지 않은건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육교사도 의료진도 학대가 맞다고 하는데도 즉시 분리시키지 않고 수사를 종결시킨
무능한 경찰의 행동은 명백한 직무유기이며 아이를 사지로 몰고간 공범이다"라고 비판했다.
방송을 통해 알려진 충격적인 사실은 양모의 어머니, 즉 정인이 외할머니가 어린이집 원장님이었다는 사실이다.
양모의 모친은 자신을 찾아온 취재진을 피해 달아나다가 결국 인터뷰에 응했다.
"학대 정황을 파악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나도 너무 예뻐했다. 제 딸이 정인이를 너무 완벽하게 키우려고 했는데 그렇게 안됐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이어 "사진 못봤느냐...잘못 키운 정도가 아니다"라며 사진을 보여주려 하자 "아악 사진 보여주지 마세요. 무서워요!"라고 절규했다.
시종일관 자신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는 양부 또한 정인이 죽음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양부는 정인이의 피멍 사진과 관련해 "몽고반점인데 사람들이 멍으로 오해한 것이다. 피부 재생력이 좀 늦긴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는 이같은 발언에 대해 "몽고반점이라고 본인이 생각했으면 '재생력'이라는 표현을 썼을리가 없다. 본인도 멍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구속된 양모와 불구속 상태인 양부의 재판은 오는 13일 시작될 예정이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