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점가의 가장 큰 화두이자 변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 따라 바깥나들이를 거의 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책을 꺼내들었다. 이런 경향은 새해에도 이어져 독자들이 더욱 책과 가까워지고,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주제가 지난해보다 훨씬 세분화될 전망이다.
새해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는 ‘나의 생존’이다. 갑작스럽게 출현한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모든 행위를 가로막았다. 출퇴근, 등하교, 식당과 카페 출입, 여행, 사람들과의 만남 등 거의 모든 바깥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한순간에 일터를 잃고, 소득이 불안정해진 사람도 많아졌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코로나19라는 거대한 불안 속에서 독자들은 더 이상 거대담론을 논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를 지키기 위해 살아남는 방법을 책을 통해 찾고, 취미와 실용적인 활동을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과 재테크 분야는 새해에도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파크도서는 “지난해에는 재테크 서적 중에서도 주식 초보자를 위한 책이 인기를 끌었다”며 “코로나19 영향으로 자영업자들이 생계에 타격을 받고, 회사원들도 구조조정의 불안감 속에 재테크를 중시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1위는 부와 행운을 끌어모으기 위한 방법을 담은 《더 해빙》(수오서재)이었다. 매출 2조원대 기업 스노우폭스의 김승호 회장이 돈을 불린 방법을 소개한 책 《돈의 속성》(스노우폭스북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쓴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지식노마드)도 인기를 끌었다.
코로나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성찰하고 어루만질 심리학·의학 전문서적과 에세이도 지난해보다 훨씬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2021년은 개인의 문제와 사회적 문제가 얼마나 긴밀히 연결돼 있는지 깨닫게 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개개인의 삶과 경험을 밀도 있게 묘사해 일반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책들이 각광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페미니즘 관련 분야 책들도 약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20~30대 여성 독자를 중심으로 ‘성차별’이 인문 분야 핵심 테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지은입니다》(김지은, 봄알람), 《시선으로부터》(정세랑, 문학동네) 등이 지난해 페미니즘을 화두로 던졌다. 새해엔 여성 담론이 좀 더 깊이 있게, 외부에서 활발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질병과 건강 관리를 고민하는 독자를 겨냥하는 책도 많이 나올 전망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 ‘전염병’ ‘바이러스’ ‘팬데믹’ 등의 키워드로 검색되는 책이 392종에 달했다. 2019년엔 20종에 불과했다. 고세규 김영사 대표는 “코로나19와 관련된 과학 서적 증가세는 새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라며 “코로나19를 넘어 지구 환경 문제까지 주제가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생활’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는 초·중·고교 학생과 학부모를 고려한 책도 큰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교보문고 집계 결과 지난해 초등학습 분야 판매는 전년 대비 31.0%, 중고등학습 분야의 책 판매는 24.2% 늘었다. 유튜버 ‘흔한 남매’가 쓴 《흔한 남매 시리즈》는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새해 들어서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
출판·서점업계는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새해에도 선방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해 교보문고의 책 판매량은 전년 대비 7.3% 증가했다. 오디오북 업계도 종이책 시장 영향으로 큰 성과를 보였다. 국내 최대 오디오북 기업 윌라에 따르면 지난해 이 회사의 오디오북 콘텐츠는 전년 대비 90.1% 증가했다. 회원 수는 약 394% 늘었으며, 이 중 유료 구독자 수는 800% 급증했다.
박상준 민음사 대표는 “가장 전통적인 비대면 행위인 독서가 역설적으로 가장 대면적인 활동이 됐다”며 “랜선을 통한 작가와의 소통, 온라인 책 소비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