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망가지고 나서야 깨닫는 '공유지의 비극'

입력 2021-01-01 17:00
수정 2021-01-02 12:54

잭 홀 교수(데니스 퀘이드 분)는 기존 학계 정설과 다른 주장을 펼치는 기후학계의 이단아다. 그는 온난화가 빙하를 녹이고, 빙하에 축적된 천연온실가스가 배출돼 더욱 심각한 온난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온난화로 해류가 멈추면서 북반구의 기후냉각을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본다. 기후 온난화가 결국 빙하기로 이어질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의 주요 관리들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잭 역시 이런 재앙이 당장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그는 100년 정도 후에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휴리스틱(경험적 접근)의 문제 2004년 개봉한 투모로우는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과 극복을 다룬 영화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계기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변수로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커지며 새삼 주목받고 있다.

영화에서 정부와 잭이 당장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그간의 경험칙에 의존한 결과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해왔고, 환경 문제도 꾸준히 지적됐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합리적 선택을 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처럼 가장 이상적인 해답을 구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경험에 따라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해답을 찾는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인간이 완벽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이유가 ‘휴리스틱(경험적 접근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통 경험에 의한 판단은 심리적 편향(바이어스)을 유발하게 된다. 정부 관리와 잭의 안일한 생각은 ‘현상유지 바이어스’로 설명할 수 있다. 환경이 바뀌는 것과 무관하게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물체가 운동하는 방향으로 계속 가려고 하는 관성과 같은 것이다. 기능이 좋고 저렴한 제품이 나와도 그것을 탐색하는 대신 쓰던 제품을 계속 사서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파멸로 향하는 공유지의 비극영화에서 기후환경은 급격히 악화된다. 영국 연구팀은 북극과 가까운 쪽 바다부터 갑자기 수온이 13도씩 떨어지는 것을 관찰한다. 일본 도쿄 도심에는 주먹만한 우박이 내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는 사상 유례없는 허리케인이 불어닥친다. 뉴욕에서 며칠씩 장대비가 이어진다. 모두 기후재앙의 전조증상이었다. 학교별 대항 퀴즈대회를 위해 뉴욕에 갔던 잭의 아들 샘(제이크 질렌할 분)도 기후 악화로 도시에 갇히게 된다.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이어지자 정부와 전문가들이 모인다. 하지만 기존 기후 예측 모델로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다. 빙하가 녹고 해류가 바뀌면서 북반구에 거대한 눈구름이 생기고, 기온은 급강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예측했던 유일한 전문가인 잭은 눈 폭풍이 지난 뒤 북반구가 빙하기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인류는 생존조차 불투명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잭의 말을 믿지 않던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미국 대통령은 남부 지역 국민에게 피난을 지시한다. 하지만 멕시코는 미국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고 국경을 폐쇄한다. 현실과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결국 미국 대통령은 남미의 부채를 전면 탕감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미국인들은 멕시코에 난민촌을 세울 수 있게 된다.

환경파괴는 경제학에서 ‘공유지의 비극’으로 설명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공유 자원의 이용을 개인 자율에 맡길 경우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움직여 결국 자원이 남용되거나 고갈되는 현상이다. 생물학자인 개릿 하딘은 1968년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며 이렇게 말한다. “공유 자원을 자유롭게 이용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최대 이익만을 추구할 때 도달하는 곳이 바로 파멸이다.” 기후변화, 새로운 사업기회 될 수도안전지대에 있던 잭은 아들을 구하러 뉴욕으로 간다. 이미 눈보라가 시작된 뉴욕은 정부조차 포기한 지역이었다. 샘은 아버지의 조언대로 추위와 눈보라를 피해 건물 안(도서관)에서 피난하고 있었다. 함께 대피했던 사람들은 한시라도 빨리 남쪽으로 가야 한다며 도서관을 떠나려 했다. 샘은 나가면 얼어 죽을 수 있다고 설득하지만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결정할 때 논리적 이유보다는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따르는 ‘밴드왜건’ 현상을 보인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도서관을 떠나 걷던 그들은 대부분 혹한을 견디지 못하고 길에서 얼어 죽고 만다.

미래에 이 같은 기후변화를 겪을 가능성은 얼마나 클까. 경제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한 동태통합기후경제(DICE) 모형으로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윌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교수는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본다. 그는 기후변화라는 제약 요인을 성장모형에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최적 소비와 성장경로를 제시한다. 이 모형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감안할 때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노드하우스 교수는 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기 위해 ‘글로벌 탄소세’를 제안한다. <그래프1>에서 보듯 세금은 물건값을 올리고 생산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기술혁신을 촉진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공할 것이란 설명이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현대자동차가 수소전기차 분야에서 글로벌 톱티어(top-tier) 기업으로 도약한 것도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잡은 덕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샘과 친구들이 도서관 책을 태우며 추위에 견디는 사이 잭은 동료의 희생까지 감수하며 아들을 구하러 온다. 때마침 눈보라마저 사라지며 잭 일행은 탈출에 성공한다.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난 지구. 영화 속 미국 대통령은 “인류는 지구의 자원을 마음껏 써도 되는 권리가 있다고 착각했고 그것은 오만”이라고 반성하며 새로운 출발을 약속한다.

코로나19, 사상 최장기간 이어진 장마, 혹한. 이미 기후위기는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한의 추위를 견디고 구조된 샘과 동료들처럼 우리 인류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그간의 수많은 위기를 이겨내왔다. 더 늦기 전에 위기를 인식하는 것. 그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