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천사바이러스'가 퍼지길

입력 2020-12-31 16:24
수정 2021-01-01 00:07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은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연말 성탄절 풍경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소라면 북적였을 도심은 한산한 모습이었고 성탄 예배도 비대면으로 치러졌다. 경기가 위축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시민들의 기부 심리도 얼어붙었다. 여러 비영리 단체의 기부금 모금액이 예년에 비해 큰 폭으로 줄었다는 뉴스 보도를 접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2020년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하고 삭막한 한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으로 기부금이 줄어드는 현상을 오롯이 코로나19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해마다 비영리 단체들의 기부금 사용처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논란은 기부금을 모집하는 단체에 대한 국민의 강한 불신을 초래하는 불행을 낳는다. 불신이 깊어질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주변의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아간다.

한 번 잃은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는 비영리 기관에 대한 신뢰는 해당 기관이 얼마나 투명한가, 투명성 확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펼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그런 노력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행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대한적십자사 역시 지난 한 해 투명성과 진정성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코로나19 극복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취약계층과 의료진 등을 위한 방역물품과 구호물자 지원은 물론 코로나 전담병원 및 선별진료소 운영, 지역사회 방역활동 등 나름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려 했다. 이런 노력이 더욱 건강한 기부문화를 조성하는 데 일조하기를 바랄 뿐이다.

모금 단체는 투명성과 함께 청렴도 중요하다. 청렴은 말로는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엔 어려움이 많다. 청렴을 단순히 부패에 대응하는 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고결하게 살아가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 청렴과 투명성을 통한 신뢰를 찾는다면 기부 심리도 되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다.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소득 하위 20%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약 163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했지만, 소득 상위 20%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약 1039만원으로 같은 기간 2.9% 증가했다고 한다. 고소득층 가구는 더 부자가 됐고 저소득층 가구는 더 궁핍해졌다는 이야기다.

조금 엉뚱한 말로 들릴지는 몰라도 나는 온 사회에 ‘바이러스’가 퍼졌으면 좋겠다. 바로 ‘천사 바이러스’다. 천사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마음이 즐겁고 따뜻해지는 ‘마즐따 증후군’이 발병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를 배려하고 나누는 천사 바이러스야말로 코로나바이러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최고의 백신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