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서드포인트가 인텔을 겨냥해 “자회사 매각을 포함한 대안을 강구해 삼성 등 경쟁사에 대응하라”고 촉구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인텔이 삼성, TSMC, AMD 등에 빠르게 시장을 내주면서 자사 이익이 침해됐다는 이유에서다.
댄 러브 서드포인트 최고경영자(CEO)는 29일(현지시간) 인텔 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별도 투자 자문사를 고용해 전략적 대안을 모색하라”며 이같이 요구했다. 서드포인트는 기업 주식을 공격적으로 사들여 의결권을 확보한 뒤 지배구조 개선이나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다. 서드포인트가 확보한 인텔 주식은 시가총액(2000억달러)의 0.5%인 10억달러 규모다. 서한을 보내기 직전 인텔 주식을 집중 매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러브 CEO는 “인텔이 수차례 실책을 범하면서 삼성과 TSMC 등의 추격을 허용했다”며 “핵심인 컴퓨터 프로세서 시장에서도 AMD에 상당히 잠식당했다”고 지적했다.
인텔의 경쟁력 상실은 미국의 국가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러브 CEO의 경고다. 그는 “인텔의 시장점유율 하락과 함께 데이터센터, 핵심 인프라 등 최첨단 반도체에 대한 미 정부의 접근성이 약화되고 있다”며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동아시아 국가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우려했다.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의 거대 기술기업에 더 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브 CEO는 투자 자문사와 계약해 전략적 대안을 모색하라고 요구했다. 이 대안에는 사실상 실패로 귀결된 인수합병(M&A) 기업을 처분하는 방안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로이터통신은 이와 관련, 인텔이 2015년 167억달러를 들여 인수한 프로그래머블 칩(FPGA) 제조 업체인 알테라의 매각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텔은 반도체 제조 미세공정인 7㎚(1㎚=10억분의 1m) 전환이 지연되면서 올해 저조한 실적을 보여왔다. 아이폰 제조업체 애플과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업인 엔비디아는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와 손잡았다. 인텔과 오랫동안 협력했던 MS는 직접 설계한 반도체를 쓰겠다며 독자 칩 개발에 나서고 있다. 러브 CEO는 “우리 제안이 거부되면 인텔의 차기 이사회에서 이사를 직접 추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텔은 즉각 성명을 내고 “주주 가치 증대 방안과 관련해 서드포인트와 협력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인텔 주가는 전날보다 4.93% 급등한 49.39달러로 마감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