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에서도 빈곤은 여전히 심각한 사회 문제다. 한국에선 문재인 정부 3년6개월간 빈곤층이 55만 명 넘게 늘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같은 기간 증가한 빈곤층(약 23만 명)의 두 배가 넘는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등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을 편 정부에서 역설적으로 빈곤층이 더 늘어난 것이다.
빈곤문제 전문가로 미국 뉴욕주와 뉴욕시 등에서 20년 넘게 직접 빈곤정책을 다뤄본 로버트 도어 미국기업연구소(AEI) 소장은 “빈곤과의 싸움은 정부의 복지 지원만으론 해결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빈곤층 스스로의 자립 노력과 정부의 근로 의욕 고취를 빈곤 탈출의 핵심 키워드로 꼽았다. 도어 소장을 최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빈곤 퇴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뭡니까.
“사람들이 일을 통해 수입을 얻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 수입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데 충분치 않을 경우 식료품 지원, 세제 혜택, 공공 의료보험, 아이 돌봄 같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밖에 중요한 요인은 가족과 경제 성장입니다. 보통 두 부모 가족은 한 부모 가족보다 가난에 더 잘 대처합니다. 또 경제가 성장하고 고용이 늘면 빈곤이 감소합니다. 가족 형성을 돕고 경제 성장과 민간의 고용 창출 능력을 높이는 정책이 빈곤 퇴치에 효과적입니다.”
▷복지 대상자에게 일을 하도록 요구하고, 일하는 빈곤층에 복지를 더해주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말씀한 적이 있던데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지위가 상승하고 스스로의 성공을 통해 자존감을 갖도록 돕는 정부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복지 지원을 받기 위해 정부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당신을 돕겠지만 당신 스스로도 자립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빈곤 퇴치를 위해선 무엇보다 일이 중요하고, 성공은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노동 공급이 많기 때문에 저숙련 노동자 임금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빨리 오르지 않습니다. 임금만으로 가족을 부양하기 충분치 않을 때가 많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빈곤층이 일을 할 때 정부가 복지로 보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부유세 도입, 고소득층 증세, 법인세 인상을 통해 세수를 늘려 인프라 등에 투자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런 정책이 빈곤 퇴치에 도움이 될까요.
“오히려 빈곤 감소 노력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벌고 성장하는 능력을 저해하고, 세금을 통해 돈을 빼가면 사람들은 전보다 덜 투자하고 그 결과 경제는 덜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자리를 가질 기회도 줄어듭니다. 코로나19 전인 2019년 말 미국의 고용시장은 아주 좋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낮은 세금 부담이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법인세 인하(35%→21%)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자리를 얻고 기술을 습득하려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증세가 이뤄지면 경제가 위축되고 다른 누구보다 (경제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롭고 빈곤과의 싸움에서 역효과를 낳을 겁니다.”
▷바이든 당선인의 조세정책이 경제적 불평등 해소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 부분은 확실치 않습니다. 증세가 상위층 소득을 감소시켜 빈부격차를 줄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하위층에 타격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불평등을 줄이려다 빈곤층에 해를 끼치는 ‘누워서 침뱉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빈곤층을 돕기 위해 연방 최저시급을 7.5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빈곤 해소에 도움이 될까요.
“아닙니다. 미국은 지역마다 노동시장이 다릅니다. 각각의 주가 최저임금을 정하는 게 더 나은 접근법입니다. 최저시급이 전국적으로 15달러로 오르면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예 일자리를 못 구해 한 푼도 못 벌 수 있습니다. 고용주들이 ‘새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하겠다. 직원 채용 대신 기계를 쓰겠다’고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진입 단계(entry-level) 일자리나 고졸 미만, 장애인, 파트타임 희망자 등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타격을 줄 겁니다. 따라서 최저임금은 고용주의 채용 의욕을 꺾을 만큼 높아선 안됩니다. 학계에서도 최저임금이 너무 오르면 하위층 고용에 해롭다는 걸 대부분 인정합니다.”
▷기본소득은 어떻게 봅니까.
“사람이 건강하고 활력 있게 사는 데 핵심 중 하나가 일입니다. 기본소득은 사람과 일, 사회의 연결을 떨어뜨릴 겁니다. (기본소득을 받게 되면) 사람들은 적게 일할 것이고, 기술은 위축되고 일을 통한 자존감도 줄어들 겁니다. 무엇보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이를 지지하는 이유는 다른 복지 서비스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보편적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지급되고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에서 중·상위층으로 복지 지원을 이전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저는 20년가량 빈곤과 싸웠고 뉴욕주와 뉴욕시의 복지 프로그램을 맡아 일했습니다. (빈곤과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입니다.”
▷미국의 국가채무 급증은 어떻게 봅니까. 미 의회예산국(CBO)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 연방정부 채무가 지난해 79%에서 2050년 195%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우리는 미래 세대에 짊어지기 힘든 짐을 주고 있습니다. 채무 축소와 지출 통제에 진전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은 비상상황이라 그걸 할 시기는 아니지만 위기가 끝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까요.
“건강보험 지출 증가 속도를 억제하고 경제에 해롭지 않은 방식으로 세수를 늘릴 수 있도록 폭넓은 과세 기반을 확충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9000억달러 규모의 코로나19 부양책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고려할 때 합리적 수준입니다. 그보다 더 많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올해 대선에서 미국 사회가 다른 어느 때보다 분열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통합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분열돼 있고 강한 의견 불일치가 있지만 2020년은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로 미국 사회가 분열된) 1968년이나 (대공황으로 사회가 찢긴) 1932년, (남북전쟁이 터진) 1861년이 아닙니다. 미국은 과거에 위기를 이겨냈고 이번에도 그럴 겁니다. 그리고 일부 소셜미디어와 언론, 정치인들이 분열을 부추긴 측면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말로 좌우 양 극단을 자극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돈벌이를 하고 이익을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분열은 (번영을 누리는) 동·서부 해안과 그동안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지역(내륙) 등 경제적 단층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잘 대처한다면 미국은 다시 하나로 뭉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입니다. ‘완전한 통합’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저는 느슨하고 어지러운 듯한 민주주의보다 전체주의에 의한 가짜 통합이 훨씬 나쁘다고 봅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저는 사람들이 오직 한 가지 방식으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중국이 하는 것이 모델’이란 생각은 터무니없고, 위험하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것(중국식 모델)은 반민주적이고 다양성에 반하고 전체주의적입니다. 그들이 통합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 그렇지도 않을 뿐 아니라 더 좋은 시스템도 아닙니다. 저는 ‘가짜 평온’보다 미국의 느슨한, 논쟁이 있는 민주주의를 택할 겁니다.”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출범했습니다.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재가입해야 할까요.
“구체적인 상황은 모르겠지만 우리(AEI)는 일반적으로 상품, 자본, 노동이 전 세계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무역장벽을 낮추려는 노력을 지지합니다.”■ 로버트 도어 소장은…
빈곤 퇴치 20여년 '외길'…초당적 빈곤 대책 주도
로버트 도어 미국기업연구소(AEI) 소장(59)은 뉴욕주, 뉴욕시 등 현장에서 20년 넘게 빈곤문제를 다룬 정책가이자 학자다. 특히 마이클 블룸버그가 무당파로 뉴욕시장을 지낼 때 식료품 보조, 공공 건강보험 등 12개 복지 프로그램을 관리하며 뉴욕시의 빈곤 퇴치를 이끌었다.
AEI에는 2014년 합류했다. 보수 성향의 AEI와 진보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한 빈곤 관련 프로젝트를 주도했고 지난해 7월 12대 AEI 소장에 취임했다. 취임 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다른 관료의 치어리더 역할을 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니다”며 초당적 연구를 강조했다.
△워싱턴DC 출생
△프린스턴대 졸업
△뉴욕 지역지 할렘 밸리 타임스 편집자
△뉴욕주 임시직·장애인 지원국 책임자
△뉴욕시 인적자원청 책임자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