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호르히자동차의 설립자였던 아우구스트 호르히(1868~1951)는 회사를 떠난 뒤 1910년 독일 작센주 츠비카우에 터를 잡고 아우디(AUDI)를 세웠다. 하지만 2차대전 이후 츠비카우가 소비에트 연방이 관할하는 동독에 편입되자 아우디는 서독의 잉골슈타트로 본사를 옮겼다. 이후 츠비카우 공장은 동독 유일의 승용차인 ‘트라반트’ 생산기지로 전환됐다.
트라반트는 1991년 단종될 때까지 300만 대 이상이 생산됐지만 품질 면에서 경쟁력이 없었다. 배출가스도 심각해 옛 서독 지역에서는 등록이 금지될 정도였다. 이에 따라 동독 자동차관리기구 IFA는 폭스바겐과 함께 트라반트 대체 조립공장을 설립했지만 곧바로 통일이 되면서 폭스바겐이 나머지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1991년 5만 대의 조립 규모로 시작된 공장은 증설을 거듭하며 연간 30만 대 규모로 커졌다. 이 공장은 올 6월까지 116년 동안 폭스바겐 차량 604만 대를 비롯해 누적 951만 대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생산했다. 독일 내연기관의 ‘근대 역사관’인 셈이다.
하지만 츠비카우 공장은 지난 6월 26일 생산된 ‘7세대 골프R’을 마지막으로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의 막을 내렸다. 오래전부터 준비하던 전기차 생산 준비가 모두 끝났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11월 ‘파사트 바리안트’가 제작되던 생산 라인에서 전기차 ‘ID.3’를 만들기 시작했고 올해 8월에는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ID.4’ 생산에 들어갔다.
그런데 100년이 훌쩍 넘은 내연기관 자동차 공장의 변신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가 하나 있다. 내연기관 생산에 익숙해있던 근로자 전환 배치를 위해 꽤 오랜 시간 노력해왔다는 점이다. 새로운 생산 시스템에 대한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폭스바겐은 공장 전환 계획이 세워졌을 때부터 노동조합과 함께 ‘생각 전환 교육’을 집중적으로 펼쳤다. 특히 근로자들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많은 교육 투자를 했다.
폭스바겐이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 중 대표적인 것이 ‘방 탈출’ 게임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다양한 기구를 활용해 전력을 만들고 사용하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이 직원들이 전동화의 필요성을 공감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외부 에너지 공급 없이 참여자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 물을 끓이고 전구를 밝히면서 전동화는 단순히 이동 수단의 동력이 바뀌는 게 아니라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변화임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겠다는 지원자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지원자를 대상으로 관련 기술을 전문적으로 교육하고 생산의 핵심 인력으로 배치했다. 동력 전환의 패러다임에 맞춰 전기차 부문의 리더가 되자는 일종의 공감대가 노사 사이에 형성된 셈이다. 생산 시설 전환은 얼마든지 비용 투자로 가능했지만 사람의 변화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한 폭스바겐의 숨은 전략이었다.
최근에는 국내 자동차 업체도 전기차 대량 생산 준비에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노사 모두 전용 공장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양측의 속내는 조금씩 다르다. 노조 측은 공장을 새로 짓자고 주장하고, 사측은 폭스바겐처럼 기존 내연기관 공장을 전기차 전문으로 바꾸자는 입장이다. 물론 각자의 이해가 있겠지만 우리보다 앞서 전동화 전략을 추진한 폭스바겐의 선례는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생각의 전환으로 일자리를 지킨 것은 물론 근로자 또한 새로운 기술 습득 기회가 제공돼 결국 ‘윈윈’ 효과를 거뒀으니 말이다.
권용주 <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