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중기, 예술 입힌 마스크로 美 공략 나섰다

입력 2020-12-29 17:06
수정 2021-01-06 18:25
그린오션 글로벌은 지난 7월 설립된 패션마스크 제조업체다. 김훈재 대표는 마스크를 수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경험이 전혀 없는 신생업체가 직접 홍보·마케팅을 통해 해외 판매경로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해외에서도 ‘통할’ 디자인 업그레이드 과정도 필요했다.

이때 한젬마 아트디렉터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한 디렉터는 베스트셀러 《그림 읽어주는 여자》의 작가이자 미술전문MC로 유명하다. 그는 국내 아티스트인 이동민, 홍원표, 아트놈을 비롯한 유명 작가들을 그린오션 글로벌과 직접 연결시켜 줬다. 유명 작가들이 개발한 디자인이 한 디렉터 조언을 거쳐 마스크에 새겨졌다.

패션마스크 판매는 KOTRA가 앞장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현지 출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KOTRA 북미지역본부 직원들이 직접 나섰다. 김 대표는 “한 디렉터와 KOTRA의 도움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KOTRA가 지난달부터 시작한 ‘디자인콜라보 패션마스크 프로젝트’가 중소기업과 작가들의 새로운 상생협력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코로나19 사태로 필수 생활용품이 된 마스크에 디자인을 입혀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판로 개척을 돕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29일 서울 이태원의 한 공방에서 만난 한 디렉터는 이번 프로젝트를 한마디로 ‘아트콜라보’라고 표현했다. 아트콜라보는 아트 컬래버레이션의 줄임말로, 예술과 비즈니스의 결합을 뜻한다. 그는 국내에서도 아트콜라보를 확산시킨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그는 2012년부터 5년간 KOTRA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면서 수백여 곳의 수출 중소기업과 작가들의 만남을 주선했다.

통상 아트콜라보는 대기업들이 명품 판매를 위해 유명작가에게 의뢰하는 작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한 디렉터는 아트콜라보는 대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상당수 중소기업은 예술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큰 비용이 들어가는 줄 알고 손사래를 친다”고 아쉬워했다. 한 디렉터는 명화(名畵)를 대표 사례로 제시했다. 그는 “중소기업들은 반 고흐 등 해외 유명작가의 그림을 활용할 때 으레 저작권료가 비쌀 것이라고 짐작한다”며 “하지만 작가 사후 70년이 넘은 작품은 저작권료가 무료”라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클림트 ‘키스’ 등 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패션마스크에 새겨졌다.

한 디렉터는 기업이나 제품마다 잘 어울리는 고유의 디자인이 있다고 했다. 기업이 개발한 제품과 아티스트 작품을 ‘연결’하는 것이 그의 주된 임무다. 앞서 그는 KOTRA에 찾아온 한 들깨기름 판매업체엔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을 라벨에 장식할 것을 추천했다. 유럽에서 익숙한 밀레의 명화를 통해 해당 업체는 유럽 시장에서 ‘수출 대박’을 거뒀다. 몸매 관리를 해주는 의료기기에는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비너스 그림을 입혀 바이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 디렉터는 “중소기업들은 예술을 결합한 제품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고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팝아트 선구자인 앤디 워홀이 남긴 “예술은 비즈니스고, 비즈니스는 예술”이라는 구절을 소개했다. 아트콜라보는 작가의 스토리와 이미지를 제품에 덧붙여 소비자를 사로잡는 마케팅 방식이다.

그는 기업과 아티스트가 아트콜라보를 통해 ‘상호 윈윈’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협업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디렉터는 “기업과 아티스트들이 서로의 고집을 꺾고 파트너로서 인정해야 협업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