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재난지원금에…연초부터 '국가 비상금' 56% 헐어쓴다

입력 2020-12-29 13:15
수정 2020-12-29 13:21

정부가 9조3000억원에 이르는 '코로나 맞춤형 피해지원 대책'을 이행하기 위해 내년 예비비 예산에서 4조8000억원을 꺼내 쓰기로 했다. 총 예비비(8조6000억원)의 56%를 연초부터 쓴다는 얘기다.

예비비는 천재지변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비상금'이다. 올해처럼 집중 호우가 발생하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심해질 때 긴급하게 쓸 돈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초 시행할 '코로나19 3차 확산에 대응한 맞춤형 피해지원 대책'에 9조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29일 밝혔다.

이 가운데는 기존에 편성된 내년 예산 3조4000억원이 포함돼 있다. 연초에 고용·소득 지원 예산을 집중 투입한다는 뜻에서 총 규모 9조3000억원에 포함시켰다.

나머지 5조9000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예산 집행 잔액 6000억원을 쓰고, 기금운용계획 변경으로 5000억원을 조달한다. 이러고도 4조8000억원이 모자라 내년 예비비를 꺼내 쓰기로 했다. 정부는 당초 3차 재난지원금을 위해 예비비를 3조2000억원 쓸 것이라고 예고했으나 실제로는 1조원 이상 늘었다. 처음 계획과 달리 소상공인 임차료 지원, 선별진료소 확충과 같은 방역 강화 등에 추가로 지출하기로 하면서다.

내년 예비비 예산은 총 8조6000억원이다. 연초부터 절반이 넘는 4조8000억원을 쓰면 3조8000억원밖에 안 남는다. 특히 감염병·구조조정 대응, 복지 지원금 부족 시 등 사용처가 정해진 '목적예비비'가 7조원에서 2조2000억원으로 쪼그라든다. 4조8000억원 전액을 목적예비비 예산에서 조달하기 때문이다.

비상 시 정부 대응 여력이 부실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물론 비상 사태 때 예산이 모자라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 하지만 추경을 편성하는 데는 보통 한달 이상이 걸린다. 국회에서 합의가 안되면 더 지연될 수도 있다. 반면 예비비는 국무회의 의결만 하면 바로 쓸 수 있다.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올해초 코로나19가 처음 확산됐을 때 검사 시설과 방역 물품 등 확충을 바로 할 수 있었던 것도 예비비 덕분이었다. 올 여름 대규모 수해가 발생했을 때 예비비가 충분치 않았다면 피해 대응을 제때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가 발생하거나 코로나19 확산세가 더 심해졌을 때 예비비가 부족해 적시에 재정 지원을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목적예비비는 주요 사용처 중 하나가 '복지 지원금 부족 시 지급'이다. 목적예비비가 쪼그라들어 취약계층 저소득층 등 지원금이 갑자기 끊겼을 때 대응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런 탓에 연초부터 '예비비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의 추경 편성을 따로 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코로나19 3차 확산으로 인한 피해가 급격히 커져 예비비를 상당 부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3차 확산은 지난달말부터 본격화됐다. 12월에 내년 '본예산'을 심의할 때 재정 소요를 충분히 반영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코로나19 방역은 최우선 과제임에도 내년 본예산에 제대로 대책을 담지 않았다가 '뒷북 대응'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