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알리바바그룹의 핀테크 계열사인 앤트그룹에 사실상 해체 명령을 내렸다. ‘빅테크(대형 정보기술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당국의 금융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겸 앤트그룹 최대주주가 ‘시범 케이스’로 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앤트그룹에 수조원을 투자한 글로벌 투자자들도 낭패를 보게 됐다.
앤트그룹 성장에 먹구름28일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인민은행,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외환관리국 등 4개 기관은 앤트그룹에 대한 요구 사항을 공개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26일 앤트그룹 경영진을 소환해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형식은 ‘요구’지만 실체는 ‘명령’으로 해석된다.
금융당국은 앤트그룹에 ‘본업인 결제업무로 돌아갈 것’과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할 것’을 집중 주문했다. 앤트그룹은 모기업인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의 결제 대행 서비스인 ‘알리페이’로 출범한 회사다. 알리페이는 모바일결제로 영역을 넓혀 현재 중국에서 10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텐센트의 위챗페이와 함께 중국 결제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앤트그룹은 결제사업을 발판으로 금융업에 진출해 소액대출, 온라인 보험 등에서 중국 최대 사업자로 성장했다. 올 상반기 앤트그룹이 올린 매출 725억위안(약 12조1800억원) 가운데 63%가 금융업에서 나왔다. 소액대출 비중이 39%로 가장 높다. 본업인 결제서비스 매출은 35.8%밖에 되지 않는다. 이 사업은 소비자와 가맹점을 유지하는 데 매출의 대부분이 사용되기 때문에 이익이 거의 나지 않는다. 소비자가 알리페이 앱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소액대출과 리차이(理財·중국 특유의 재테크 상품), 보험 등으로 수익을 낸다. 알리페이 사용자가 워낙 많아 중국의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상당수가 앤트그룹과 제휴를 맺고 있다.
중국 금융당국의 명령은 이런 금융업을 떼어내 별도의 지주사를 설립하라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달부터 금융자산 1000억위안 이상인 비은행 금융사에 금융지주사를 설립하고, 지주사 면허를 받지 못하면 금융회사 지분을 팔거나 경영권을 포기하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지난달 초 앤트그룹의 상장이 전격 중단된 이유 중 하나도 금융지주사 면허를 받지 못해서다.
금융지주사 면허를 취득하려면 산하 금융자회사의 자본금 50% 이상을 출자해야 한다. 중국은 또 소액대출업체가 대출 재원을 조성할 때 채권 발행을 자본금의 4배 이하로 제한하는 규제도 추가했다. 앤트그룹은 지난 6월 말 기준 자본금의 4.7배에 해당하는 채권을 발행했다.
앤트그룹이 금융지주사 조건을 맞추려면 자본금을 대폭 늘려야 한다. 하지만 당국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상장까지 막힌 앤트그룹이 새로운 투자자를 찾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당국의 금융지주사 설립 요구가 사실상 금융업에서 손을 떼라는 명령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앤트그룹은 “시정업무팀을 구성해 요구 사항을 전면 이행하겠다”며 “즉각 시정 계획과 시간표를 마련할 것이며 이행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감독관리 지시를 받겠다”고 밝혔다. 대기업 규제 강화하는 중국블룸버그통신은 ‘대박’을 기대하고 앤트그룹에 수조원을 쏟아부은 글로벌 투자자들도 악몽에 시달리게 됐다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앤트그룹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국부펀드, 칼라일, 워버그 등 총 10곳의 기관투자가로부터 140억달러(약 15조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기업가치는 유치 당시 1500억달러에서 지난달 상장 추진 시점에는 3150억달러로 커졌다. 두 배 이상의 차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앤트그룹 해체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대규모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프리스금융그룹의 천수진 중국리서치 대표는 “앤트그룹의 결제사업은 이미 중국에서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라며 “결제에만 집중하면 성장성이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 당국이 빅테크에 대한 규제를 계속 강화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앤트그룹은 물론 모기업인 알리바바,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텐센트, 음식배달업체 메이퇀뎬핑 등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플랫폼 기업들의 앞날도 어두워지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지난 16일 폐막한 중앙경제공작(업무)회의에서 내년 중점 임무 중 하나로 대기업 반독점 규제 강화를 제시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