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안으려 '요기요' 팔아야 하는 딜리버리히어로 [종합]

입력 2020-12-28 14:54
수정 2020-12-28 14:55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배달의민족(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을 인수(M&A)하기 위해서는 현재 거느린 '요기요'를 매각해야한다고 결론 내렸다. DH가 공정위의 조건을 수용한다면 국내 2위 배달앱(운영프로그램) 요기요가 새 주인 찾기에 나서게 된다.

공정위는 28일 DH와 우아한형제들의 M&A와 관련, DH가 요기요를 운영하는 한국 자회사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DHK) 지분 전량을 6개월 내 제3자에 매각하는 조건으로 승인했다. 앞서 DH는 지난해 12월 우아한형제들 지분 약 88%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고 공정위에 기업 결합을 신청한 바 있다. 배민과 요기요는 각각 국내 1위, 2위 배달앱이다. 요기요·배민 합병시 점유율 99.2%…"경쟁제한 우려" 공정위는 요기요와 배민이 결합할 경우 점유율 합계 99.2%(지난해 거래금액 기준)가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쿠팡이츠, 카카오, 네이버 등이 배달·주문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점이 변수가 될 가능성도 점쳐졌으나 공정위는 다른 플랫폼의 영향력은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안드로이드 기준 18만5000명이었던 쿠팡이츠 사용자는 올해 126만4000명으로 늘었다. 1년 새 100만명 이상이 쿠팡이츠의 신규 사용자로 유입된 것이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쿠팡이츠의 점유율은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쿠팡이츠의 점유율이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전국시장을 기준으로 한 점유율은 아직 5% 미만이라는 해석이다. 특히 과거 5년간 5%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한 경쟁 앱이 없었다는 점도 공정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인터넷 검색과 연계한 네이버 주문 서비스도 요기요와 배민에 충분한 경쟁압력을 주지 못한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포털이나 지도앱을 통해 음식점을 검색한 후 주문버튼을 통해 주문하는 네이버 간편주문의 지난해 거래실적은 배민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배민과 요기요 간의 경쟁이 사라지면 소비자 혜택이 감소하고 음식점 수수료가 인상되는 등 경쟁제한행위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공정위는 요기요 매각이 완료될 때까지 양사가 분리·독립 운영해야 하며, 입점 음식점에 적용하는 실질 수수료율을 변경할 수 없도록 했다. 요기요 배달원의 근무조건 등을 변경하거나 이들을 배민 배달원으로 유도하는 것도 금지된다. 아울러 데이터(정보자산)의 이전 및 공유도 금지된다. "DH, 조건 받아들일 것"…배달시장 판도 변화 일각에서는 2009년 오픈마켓 시장 점유율 1, 2위 기업이었던 G마켓과 옥션이 합병된 이후에 쿠팡·네이버 등이 등장하며 독점시장이 무너진 전례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공정위는 G마켓 옥션 사례와 이번 합병 사례는 상황이 다르다고 봤다. 당시 G마켓이 옥션을 제치고 점유율 1위로 등극한 반면, 배달앱 시장에는 지난 10년 동안 요기요와 배민을 제외하고 시장점유율 5% 이상의 사업자가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 방침이 '사실상 불허결정이 아니냐'는 의견에 대해 공정위는 DH의 합병 추진 목적을 들어 "DH가 이번 요구를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DH는 이번 기업결합을 통해 DH가 가진 물류시스템 기술과 우아한형제들의 마케팅 능력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며 "기업결합 목적이 독점이 아니라 서로의 강점으로 시너지 효과를 만드는 것이라면 DH가 이번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IT 및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DH가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 결정을 수락하고 요기요 매각을 준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상장사인 DH는 이같은 내용을 이르면 이날 중 공시할 예정이다. 매각 조건과 상대회사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관계자는 이날 "아직 본사(DH)의 입장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만약 DH가 공정위 조건을 따르지 않고 기업결합을 강행하면 연간 약 5000억원의 강제 이행금을 내야한다. DH가 공정위 조건을 거부하면 사실상 배달의민족 인수가 무산된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벤처업계 "공정위 결정, 스타트업 혁신 성장 저해" 벤처업계에서는 이번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이 업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스타트업단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공정위는 플랫폼 사업자가 네트워크 효과를 바탕으로 얼마든지 음식배달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을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픈커머스 사업자가 음식배달 시장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에 연이어 진출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사업자가 라이브커머스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디지털 경제의 현주소"라고 덧붙였다. 공정위가 플랫폼 사업자의 역동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포럼은 "국내 대표 유니콘 기업 우아한형제들과 글로벌 기업DH의 결합은 국내 최대규모 스타트업 M&A인 동시에, 글로벌 진출의 중요한 이정표였다"며 "그러나 이번 공정위 결정은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가치 평가에 악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진출에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공정위의 결정은 DH의 수용여부와 무관하게 디지털 경제와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이번 결정의 과정과 결과 모두 혁신성장을 저해하고 국내 스타트업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음을 무겁게 인식하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