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중국 쑤저우 시만 10만명은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쑤저우시로부터 200위안(약 3만4000원)을 지급 받았다. 1000만명이 넘는 쑤저우 인구 중 무작위로 선택된 1%였다.
하지만 이들이 지급받은 돈의 형태가 특이했다. 지폐가 없는 말 그대로 디지털 통화였다. 이미 사용이 활성화된 위챗페이, 알리페이 등 모바일 결제수단과 유사하지만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고 가치를 보증하는 통화였다.
2021년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디지털 위안화의 시범 시행이다. 한국은행을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올해 들어서 준비를 시작한 반면 중국 인민은행은 2014년 전담 팀을 구성해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막 도입이 시작된 디지털 위안의 유통 양상을 보면 달러화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치밀한 준비와 향후 포석을 살필 수 있다. 디지털 위안은 또 기존 화폐 대체를 궁극적인 목표로 추구하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미래가치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모바일 결제보다 편한 디지털 위안
중국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디지털 위안화 지급은 주요 은행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뤄졌다. 각 은행이 고객에게 지급할 디지털 위안화 만큼의 예치금과 인증서를 제출하면 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을 발행해 주는 방식이다. 현재 위안화 현금 지급 방식과 동일하다.
디지털 위안 지급 대상자로 선정된 쑤저우 시민들은 공상은행, 건설은행 등 주요 은행 중 자신이 이용하는 은행의 앱을 열어 입금된 디지털 위안을 확인할 수 있다. 상점에서는 해당 앱에서 디지털 위안 관련 QR코드를 제시하고 결제를 한다.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일반화된 카카오톡의 QR체크인 과정과 유사하다.
디지털 위안 결제의 시범 시행을 위해 쑤저우에서는 1만여 곳의 상점이 위안화 사용처로 등록했다. 사용이 불가능한 점포는 거의 없었다는 전언이다. 징둥 등 중국 내 온라인쇼핑몰도 디지털 위안화 사용을 위한 창구를 개설했다.
여기까지는 위챗페이 등 기존 모바일 결제수단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인민은행은 후발 주자에 해당하는 디지털 위안의 확산을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와 편의장치를 마련했다.
우선 디지털 위안 사용에는 수수료가 없다. 위챗페이와 알리페이는 사용금액이 일정 한도를 넘어면 소비자에게 사용액의 0.1%를 수수료로 부과하고 있다. 상점 및 음식점에는 사용액의 0.4%를 부과한다. 디지털 위안 자체가 현금과 동일한 지위를 갖는만큼 수수료를 부과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에서다.
결제와 동시에 소비자 계좌에 있던 디지털 위안이 판매자에게 이동한다는 점도 장점이다. 위챗페이 등은 통상 하루 정도 지나 판매자에게 해당 금액이 입금된다. 텐센트와 알리바바 등 운영사들이 결제대금이 예치된 하룻동안 금융기관 등에서 별도의 이자수익을 올리기 때문이다.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능을 활용해 인터넷 통신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큰 강점이다. 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을 설계하며 여객기 안이나 지하 주차장 등에서도 무리 없이 결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한데 따른 것이다. 디지털 경제에서 달러화를 넘어설 이유디지털 위안 사용의 확장성이 기존 모바일 결제 수단보다 넓다는 점도 큰 차이다. 이는 디지털 위안이 중국을 넘어 세계로 확장되는 중요한 통로로 의미를 갖는다.
위챗페이와 알리페이는 기본적으로 은행 계좌와 연결돼 있다. 한국의 네이버페이, 삼성페이 등도 근본적으로 은행 계좌가 없이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은행 계좌 개설은 여러 가지 서류를 필요로 한다. 중국에서는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 번호와 주소까지 있어야 한다. 결국 중국 내 전화번호와 주소가 없으면 모바일 결제수단도 이용하기 어려워진다. 모바일 결제가 보편화되며 줄어든 중국의 현금 사용이 여행 목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에게는 일종의 장벽으로 작용했던 이유다.
하지만 디지털 위안은 본인을 특정할 수 있는 수단만 있으면 지급 받을 수 있다. 외국인 여권을 비롯한 신분증은 물론 자동차 번호판을 디지털 위안과 연계하는 것도 가능하다. 고속도로를 주행하거나 정차 중인 차량에서 디지털 위안으로 서비스를 결제하는 시스템까지 개발되고 있는 이유다.
중국은 2022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위안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목표다. 외국인이라도 쉽게 모바일 지갑에 디지털 위안을 저장하고 중국 곳곳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한 번 편의성이 입증되면 디지털 위안의 결제 영역은 크게 확장될 수 있다.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됐지만 중국 은련카드로 결제가 가능한 호텔이나 음식점은 한국 등 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꾸준히 늘고 있다.
디지털 위안은 신용카드나 체크카드와 달리 사용자 및 판매자에 별도의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다. 높은 신용카드 해외 결제 수수료의 부담과 해당 국가 현찰 보유의 불편함을 디지털 위안이 해소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 국가 지도부가 디지털 위안을 통해 달성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쇼핑 등 디지털 경제 영역이 빠르게 확장되는 가운데 디지털 위안이 달러를 넘어 세계 디지털 경제의 결제 수단으로 자리잡게 하겠다는 것이다.
무역금융 등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면 이같은 목표는 단순히 꿈이 아니다. 디지털 화폐는 사용자와 사용기간 등을 비롯해 목적에 따라 다양한 사용조건을 특정할 수 있다.
인민은행은 이미 홍콩 금융국과 디지털 위안의 역외거래를 실험하고 있다. 약해지긴 했지만 국제 금융 및 무역 허브로서 홍콩의 위상을 감안하면 이같은 실험을 통해 디지털 위안에 세계 시장을 겨냥한 다양한 기능이 도입될 전망이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는 독?디지털 위안은 실물 없이 모바일이나 온라인 상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와 모양새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 디지털 위안이 가상화폐를 대체해 버릴 수도, 서로 보완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 양상에 따라 비트코인 등의 가치도 등락할 수 밖에 없다.
우선 중앙은행이 가치를 보증하는 디지털 화폐의 등장은 가상화폐의 활로 중 하나를 완전히 봉쇄한다. 바로 교환가치로 사용될 가능성이다.
조개껍질 이후 모든 화폐는 재화와의 교환을 기본 기능으로 가진다. 화폐로 얼마만큼의 재화를 교환할 수 있는지에 따라 화폐의 가치도 결정됐다.
하지만 2009년 처음 발행된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는 이같은 교환가치를 얻는데 실패하고 있다. 비트코인 자체로는 살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가 사실상 전무하고, 비트코인 팔아 달러로 바꿔야 교환가치를 갖는다.
디지털 위안 발행으로 시작된 디지털 통화 보급은 가상화폐가 교환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을 영원히 봉쇄한다. 국경간 이동 등의 편의성에서는 차이가 없고 가치 안정성에서는 월등한 대체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반론도 있다. 가상화폐가 디지털 화폐의 보완재 역할을 하며 앞으로도 높은 가치를 유지할 거라는 주장이다. 디지털 화폐가 갖는 태생적인 조건이 이유다.
디지털 위안은 누가 얼마만큼 보유했고, 어디에 사용하는지까지 인민은행, 더 나아가 중국 정부가 파악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이를 각종 돈세탁과 테러 자금 이용 등 불법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장점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금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가치저장의 익명성을 훼손한다. 현금은 금고에 보관하든 마늘밭에 묻든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얼마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디지털 화폐가 일반화되면 각국 정부는 개인의 자산 규모를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나날이 강화되는 중국 정부의 통제 정책과 맞물려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 요소기도 하다. 홍콩에서 시행된 역외 위안화 실험에 대해 홍콩 민주화 운동 세력이 반감을 가졌던 이유다.
그런 점에서 탈중앙화된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가상화폐가 더욱 각광 받을 수 있다. 교환은 디지털 화폐로하면서 가치 저장은 가상화폐로 하는 대체제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아직도 가상화폐는 생소하다는 점에서 디지털 화폐가 저변을 넓혀주는 역할을 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디지털 화폐를 사용하며 익숙해진 이들이 자연스럽게 가상화폐 투자로 유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앞서 나가는 중국기자는 2019년 7월까지 1년간 중국 선전에 체류하며 위챗페이 등 모바일 결제의 대중화가 가져온 중국 산업의 변화를 몸으로 체험했다. 디지털 위안의 도입은 산업과 경제 전반에 더 큰 파급을 가져올 전망이다.
2014년 디지털 화폐 전담조직을 구성한 인민은행은 2017년에는 전문 연구소도 산하에 설립했다. 비트코인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관련 기술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미래를 준비해 온 것이다.
검찰총장과 전현직 법무장관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만 가득찬 2020년 연말, 한국은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나.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