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쇼미9' 래원 "추리닝만 입다가 정장 입는 법도 배웠죠"

입력 2020-12-26 08:25
수정 2020-12-26 14:54


"'쇼미더머니9'는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큰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몇 년 뒤 누군가 음악의 터닝포인트가 있었냐고 물어보면 '쇼미더머니9'라고 답할 것 같아요. 정말 많이 배웠거든요. 추리닝만 입고 다니던 사람이 정장 입는 법도 배운 거죠."

Mnet '쇼미더머니9'에서 최종 3위를 차지한 래원은 긴 경연 과정을 겪으며 한층 시야가 넓어졌다고 했다. 이전 시즌인 '쇼미더머니8'에서 물구나무를 서며 등장해 무대 위에서 다소 우스꽝스러운 춤사위를 곁들이던 래원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그 변화의 폭을 확실히 느꼈을 테다. 자칫 가볍게만 느껴질 수 있는 이미지에 갇히는 걸 스스로 경계한 래원의 성장이 돋보였다.

'쇼미더머니9'의 여정을 마친 래원은 연신 "허전하다"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는 "'쇼미더머니'에서만 찾을 수 있는 가치들이 있다. 평소 음악 하는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닌데, 프로그램을 하면서 음악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이게 된다. 여기서 오는 행복함이 있다"며 "물론 경연을 하면서 힘든 점들도 있지만 힘든 게 한 가지라면 좋은 건 백 가지다. 경연이 끝나서 너무 아쉽고 공허하다"고 털어놨다.

최종 3위라는 결과에는 상당한 만족감을 표했다. 래원은 "쟁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정말 상상만 해본 성적이었다. 1, 2등은 아니고 '3등까지는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라며 김칫국을 마셔봤는데 그대로 돼서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고. "자존감이 높지 않아서 다들 내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말문을 연 래원은 "프로그램을 하는 내내 이 생각들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파이널을 하고 자이언티 형님이 와서 '진짜 너무 잘봤다'는 말을 했는데 그것도 못 믿었다. 이후 코드 쿤스트 형님이 '자이언티가 네 무대를 진짜 좋아했다'고 말할 때 그제서야 '내가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온 게 맞구나' 싶었다"고 고백했다.

래원에겐 결코 쉽지 않은 '쇼미더머니9'였다. 리듬을 타는 특유의 흥겨운 춤, 개성 있고 재치 넘치는 노래까지 래원은 이전 시즌에서 독특한 매력으로 심사위원들은 물론 다른 참가자들까지 웃게 했다. 그러나 이는 래원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듯했고, 곧 방향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다시 만난 '쇼미더머니9'는 도전과 극복의 연속이었다고. 다소 가볍게 출연했던 이전 시즌과는 달리, 래퍼로서의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지라 고민의 무게도 덩달아 커졌다. 프로그램 초반 낮아진 자존감 때문에 부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래퍼로서 인정받고 싶은 바람에서 시작된 것이었기에 '성장통'으로 보는 게 더 맞는 듯했다.

래원은 "1, 2차 때 거의 통편집이 됐는데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작년이랑 너무 다른 사람이 돼서 나온 거였다. 힘이 없고 풀이 죽은 상태였다"면서 "이전 시즌엔 안 그랬다. 그때는 날 래퍼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나간 거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편하게 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젠 무섭더라고요. '다른 래퍼들이 과연 나를 래퍼로 생각할까', '내가 여기서 조금만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평가절하 당하고 인정을 안 해주진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진지한 모습만 보이면 이질감을 느낄 것 같았죠."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쇼미더머니9' 초반부를 '고장 난 상태'로 보냈다는 그였다. 그렇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야만 했다. 나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래원은 "사실 작년에 했던 대로 하려고 했는데 이번 시즌은 예선부터 팀을 정하는 방식이었다. 그 팀에 녹아들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갈 수가 없는 거였다. 내가 혼자 튀어버리면 안 되는 팀이었고, 단체 미션도 있었다. 이 경쟁에서 더 오래가려면 내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에 녹아들기 위해 나를 바꿨다"고 밝혔다.

실로 '쇼미더머니9'에서 래원은 장난기를 덜고 실력적으로, 음악적으로 자신을 더 증명하고 싶어 했다. '마스크 온', 'iii', '데이드림인', 'Yay'까지 '나의 이야기'를 담는데 집중했다. 그는 "대표하는 이미지가 가벼운 느낌이라 '얘가 힙합을 놀이터로 생각하나', '장난치러 왔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았다. '쇼미더머니9'가 경쟁 프로그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급을 나누며 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리듬을 타면서 특유의 개성을 살리는 게 내 강점이지만 계속 그것만 하면 진지하게 음악에 임하고 있다는 걸 아무도 몰라 줄 것 같았다. 그래서 스타일을 바꿔 가사도 진중하게 썼다"고 했다.

경연 과정에서 큰 힘이 됐던 사람들을 향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래원은 제작진을 언급하며 "디스전 때 준비 기간이 짧아서 가사를 조금 틀렸다"며 "PD님들이 '할 수 있다'고 계속 격려해 줬다. 처음엔 래퍼가 기 죽어 있으면 방송이 재미있게 나오지 않을까 봐 힘내라고 해주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갈수록 진심이 담긴 응원을 많이 해주시더라. 다음 단계로 올라갈 때마다 함께 기뻐해 주셨다. 정말 아들 키우듯 대해주셨다. PD님들이 없었으면 매 회차마다 가사를 틀렸을 수도 있다"며 고마워했다.

소속사 사장님인 베이식도 빼놓을 수 없었다. 베이식은 래원이 학원을 다니며 랩을 배우던 시절, 그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알아봐 준 은인이었다. 래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베이식 형이 자신 있게 '난 사람 보는 눈이 있다. 내 안목을 믿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어 "'쇼미더머니' 우승 경험이 있지 않느냐. 이번에 긴장하지 말고 자신감 있게 하라는 조언을 해줬다. 그러려면 준비를 많이 하라고도 했다. 정말 베이식 형 이름처럼 기본이 중요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코드 쿤스트·팔로알토 팀에도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래원은 "프로듀서 님들에 스윙스, 맥대디, 카키 형 등 이번 '쇼미더머니9'를 하며 유일하게 친해진 분들이 코팔팀이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특히 "스윙스 형이 정말 잘 챙겨줬다. 형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며 경연 초반 혼란을 겪었던 자신을 정신적으로 잘 잡아준 스윙스에 감사를 전했다.


'쇼미더머니9'를 좋은 성적으로 마친 래원에겐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래원의 눈빛은 진지하게 변했다. "생각보다 많이 진지한 편이다"고 말문을 연 그는 "다음 스텝에 대해 고민 중이다"고 했다.

그는 존경하는 래퍼로 기리보이는 꼽으며 "기리보이 하면 바로 떠오르는 느낌의 음악들이 있다. 화려한 기교 없이도 감정 전달이 확실히 된다. 정말 '믿고 듣는' 음악이다. 노래를 잘하는 것보다 음악을 잘하는 거다. 나도 래원 하면 엄청 스킬풀한 것이 아닌, 나만의 소리를 내는 아티스트로 기억됐으면 한다. 어떤 소리를 내야 감정이 잘 전달될지 고민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래원의 내년 목표는 정규앨범을 내는 것.

"음악 하고, 앨범 내는 거 말고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계속 좋은 앨범을 낼 거예요."(웃음)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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