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맑은 날이 연속해서 이어지는 바람에 관측하느라 지쳐서 날이 흐려지길 기대하는 마음마저 살짝 든 참이다. 긴 겨울밤을 연속으로 꼬박 새우는 건 30여 년을 관측한 필자에게도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별 보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 14일 밤, 날씨 때문에 극대기를 놓친 쌍둥이자리 유성우 관측을 하면서 소형망원경 돔의 망원경으로 원격관측을 시작했다. 그동안 CCD 카메라의 셔터가 문제를 일으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본원의 전문가 손을 빌려서 수리했다. 상용으로 판매하는 제품이라 수리하려면 미국까지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코로나19 탓에 미루다 우리가 직접 수리해 버렸다. 이 망원경으로는 보통 산개성단이라는 느슨한 별의 집단을 관측하는데, 수리한 셔터 점검도 할 겸 아예 노출을 길게 주는 영상관측을 했다. 영하 17도 아래로 내려간 상황에서도 수리한 셔터가 잘 작동했고, 필터 휠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셔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필터 휠까지 문제를 일으키더니 신기한 일이다. 연구실에 앉아 원격관측을 하는 망원경이라 추위에 따른 어려움은 없지만, 별도로 여러 대의 삼각대에 카메라를 얹어서 밤하늘을 찍고 있다 보니 수시로 밖에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는 800년 만의 해후
극대기를 지난 유성우였지만 바로 다음 날엔 상당히 많은 유성을 찍었다. 카메라를 살펴보러 나올 때마다 하나씩은 본 것 같다. 그런데 이 유성우보다 12월 들면서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목성과 토성의 만남이 더 큰 관심사였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는 현상은 거의 400년 만이라고 하며, 400년 전에는 태양과 가까워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800년 만이라고도 한다. 15일, 16일, 17일엔 초승달까지 끼어들어서 초저녁 하늘에 좋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15일엔 해가 지자마자 초승달을 담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못 보고 말았다. 달이 태양에 너무 가까웠고, 옅은 구름이 있어서 실패한 듯하다. 16일은 바람이 세졌고, 기온은 여전히 영하 15도 아래로 뚝 떨어졌다. 초승달은 하루가 더 지나니 잘 보였고, 팔공산 정상에 살짝 닿은 듯 뜬 달이 마치 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 같았다. 그런 달을 목성과 토성이 위에서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쪽 하늘에는 쌍둥이자리와 오리온자리, 마차부자리 등 겨울 별자리가 멋있었지만, 오로지 서쪽 하늘의 달과 목성과 토성만 보고 있었다.
17일엔 뭐가 궁금한지 달이 목성과 토성을 바로 옆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가지고 있는 모든 카메라 장비를 1.8m 망원경 돔 뒤쪽의 공터에 설치했다. 영하 10도로 시작해 영하 16도까지 내려갔는데, 대략 2시간 동안 강한 바람을 맞고 촬영하고 나니 손과 볼이 얼얼했다. 카메라 4대를 돌아가며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카메라를 통해 본 달과 목성과 토성이 나란히 내려오는 모습은 부드러운 여명과 더불어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철길 위를 걷는 듯 비껴가다그런데 아직 안 끝났다. 목성과 토성이 서로 만나는 장면까지 봐야 한다. 휴일인 토요일 오후에 날씨가 좋아서 급하게 차를 몰아 천문대로 올라갔다. 이번엔 원격관측용 망원경에서 CCD 카메라를 떼어내고, 일반 카메라를 붙였다. 목성과 토성의 모습을 좀 더 가깝게 담으려면 초점거리가 긴 망원경을 사용해야 하고, 초점거리가 길어지면 추적이 잘돼야 하기 때문이다. 역시나 실망하게 하지 않고 한 시야에 들어 온 목성과 토성이 선명한 모습을 보여줬다. 주변의 위성도 여러 개가 뚜렷이 보였다. 그동안 너무 무심했는지,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과 레아는 처음 보는 듯하다. 밖에는 카메라 2대를 설치해 목성과 토성이 뜬 풍경을 담았다.
다음 날, 일요일 오후에는 아예 출근한 셈 치고 준비해서 다시 천문대로 올라갔다. 하루 더 가까워졌다. 위성의 배치도 완전히 바뀌었다. 마침내 최근접일인 21일이 됐다. 그런데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해가 지자마자 서둘러서 나란히 놓인 목성과 토성을 찍었다. 하루 전보다 더 가까워졌는데, 며칠 동안의 기록을 보면 마치 철길 위를 걷는 듯 서로 비껴가고 있다. 지난봄에는 두 행성이 달 크기의 10배 거리까지 다가갔는데, 이번엔 달 크기의 5분의 1 거리까지 다가간 것이다. 이 정도 거리라면 두 행성의 위성이 서로 엉키는 모습도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나란히 배열해 희한하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모두가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데, 목성과 토성이 열심히 만나러 가는 모습은 참 부러웠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마지막에는 살짝 비껴가고 있었다. 하늘도 코로나19를 피하고 싶은 듯한 상상을 해 본다.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