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환 농협은행장(사진)이 2년간 농협금융지주를 이끌 6대 회장에 내정됐다. 과거 4명의 경제관료 출신 회장을 선임해오던 농협금융이 9년 만에 내부 출신 회장을 뽑은 것이다. 손 후보자가 농협은행장을 맡은 지 10개월 만에 금융지주 회장에 전격 발탁된 점도 눈길을 끈다. 일각에서는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관피아(관료+모피아)’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행장 1년도 안돼 회장으로농협금융 이사회 산하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22일 차기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손 후보자를 추천했다. 임추위는 “앞으로 내실 있는 성장을 도모하고, 새로운 사업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성과가 뛰어난 내부 출신 손 후보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손 후보자는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농협금융의 10년 후를 설계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코로나19로 어려운 사회에 기여하는 ‘금융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1962년생인 손 후보자는 농협금융지주 경영기획부문장을 거쳐 지난 3월부터 농협은행장을 맡고 있다. 5대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첫 ‘1960년대 생’이다. 1대 신충식 회장 이후 9년 만의 농협 내부 출신이 농협금융회장에 선임되는 것이다. 신 전 회장이 농협금융이 출범한 2012년3개월 동안만 근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손 후보자가 사실상 ‘첫 내부 회장’으로 볼 수 있다.
농협금융 회장 자리는 줄곧 차관급 이상의 경제관료가 차지했다. 정책금융을 많이 다루는 특성 때문에 낙하산 관행이 점차 굳어졌다. 농협금융은 효과도 작지 않게 누렸다. 3대 임종룡 전 회장은 현재 농협금융의 ‘캐시카우’로 꼽히는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인수를 성사시켰고, 4대 김용환 전 회장은 조선해양 분야 기업금융 부실을 대거 털어낸 ‘빅배스 전략’을 펴 최근의 ‘연 순이익 1조원 시대’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된다. 정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컸다. 회장들이 정부와 의견 조율에 집중하면서 농협금융만의 색깔은 약했다는 평을 들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 10여 년간 크게 몸집을 불린 4대 금융지주에 비하면 농협금융은 인수합병(M&A)과 전략 전환 속도가 느렸다”며 “2년 임기마다 관료 출신 회장을 데려오다 보니 조직 장악력과 기민함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농협 내부에서도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각종 금융정책에 민간 금융지주보다 더 많이 동원되고 있다는 불만이 많았다. 출범한 지 10년이 다 되도록 내부 출신은 중용받지 못해 조직원들의 사기 문제도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피아 대신 내부 출신 ‘중용’김광수 전 회장의 사임으로 갑작스럽게 추진된 이번 인선에서도 결국 관피아가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최근 관피아들이 각종 금융단체장에 오르면서 이런 관측이 커져갔다. 임추위는 논란을 의식해 내외부 후보군 70명을 20명으로, 다시 4명으로 좁히는 작업을 벌였다. 내외부에 최종 후보군을 공개하지 않는 ‘철통 보안’도 유지했다.
농협금융 임추위는 이준행 사외이사(임추위원장) 등 4명의 사외이사와 농협중앙회 추천 위원인 정재영 낙생농협 조합장 등 총 5명이다. 100% 지분을 농협중앙회가 보유해 결국 농협중앙회의 의중이 가장 크게 반영된다. 최근의 관피아 논란과 노조 반발 등이 ‘내부 출신’을 중용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농협금융 노조(금융노조 NH농협지부)는 최근 “관료 출신 낙하산 회장의 선임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성희 중앙회장이 관피아를 추천받았다는 설이 파다했다”며 “그러나 중앙회장 직선제가 골자인 농협법 개정안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내부 출신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농협중앙회 감사위원 시절부터 손 후보자를 오래 지켜봐왔고, 디지털 금융에서의 성과를 높이 평가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농협금융 차기 회장은 조만간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선임될 예정이다. 임기는 내년 1월부터 2년간이다. 차기 회장이 디지털 금융 분야에서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해 나갈지, 관료 출신 회장이 맡아오던 정부와의 조율 역할을 어떻게 보완할지가 과제로 꼽힌다. 일각에선 중앙회장의 입김이 강한 농협의 특성상 이 회장의 ‘친정체계’가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대훈/강진규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