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 명가' 쌍용차, '임영웅 효과' 불구 다시 기로에 서다

입력 2020-12-22 13:33
수정 2020-12-22 13:35

쌍용자동차가 11년 만에 또 다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벼랑 끝에 섰다. 자동차 업계에선 유동성 위기에 몰린 쌍용차에 '2009년 악몽'이 되살아날까 우려하고 있다.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쌍용차는 인도 마힌드라그룹 인수와 함께 야심찬 발돋움을 예고했다. 그러나 또다시 '판매 부진과 적자, 신차 부재'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대출금마저 갚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22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쌍용차는 전날 이사회를 통해 회생절차 신청을 결의하고,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신청서, 회사재산보전처분 신청서, 포괄적금지명령 신청서 등을 접수했다. 회생절차 개시 보류 결정 신청서(ARS 프로그램)도 함께 제출하며 회생절차 개시 이전 유동성 위기를 마무리 짓겠다는 뜻도 밝혔다. '주인 7번' 바뀐 비운의 쌍용차…상하이차 사태로 치명상

쌍용차는 국내 완성차 업체 중 유독 아픔이 많은 회사다. 1954년 '하동환자동차 제작소'로 출발한 이래 쌍용차는 주인이 7번이나 바뀌었다.

하동환자동차 제작소 시절 미군 트럭 엔진과 부품을 떼다 버스를 만들던 쌍용차는 1977년 쌍용차의 전신인 동아자동차공업으로 사명을 바꿨다. 1984년 '코란도(Korean Can Do)'를 탄생시킨 '거화' 인수로 쌍용차는 사륜구동차 전문회사의 기틀을 마련했다.

1986년에는 쌍용그룹을 새주인으로 들이며 코란도훼미리, 9인승 코란도9디럭스, 무쏘를 잇따라 흥행시키는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명가로 평가받았고 지금의 '쌍용차' 상호도 갖췄다.

흥행가도를 달리던 쌍용차는 1998년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고, 대우그룹으로 인수됐다. 대우그룹 판매망을 활용해 판매량을 크게 늘리며 '제2 전성기'를 누리기는 듯 했지만 1999년 대우그룹 몰락과 함께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 수순을 밟았다. 2000년에는 채권단 관리 하에 여러 매각 대상 기업을 물색하다 2004년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되며 '기술 먹튀' 비극이 시작됐다.

당시 상하이차는 쌍용차를 인수하며 연구개발, 시설투자, 고용보장 등을 약속했지만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인수 후 5년 사이 2000여 명의 근로자를 해고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궁지에 몰리자 이듬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고 중국으로 도망쳤다. 중국 공산당의 비호 아래로 달아나며 쌍용차의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도 함께 훔쳤다.

상하이차 후폭풍은 컸다. 회생절차에 들어간 쌍용차는 2600여명 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고, 이는 반발한 노조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노조가 77일간 평택공장을 점거한 '옥쇄파업'이 발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1만5000여 대 생산차질로 3160억원 규모 손실이 발생하면서 쌍용차는 문을 닫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벼랑 끝에 섰던 쌍용차 사태는 노사가 극적 타결을 이뤄내며 정상화 국면을 맞았지만, 고강도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었다. 노조는 조업을 재개했고, 쌍용차는 그해 9월 법원에 회생계획안을 제출했다. 2011년 마힌드라 인수…빛 보는 듯했지만

2011년 인도 마힌드라를 새 주인으로 맞이한 쌍용차는 안정화의 길을 걷는 듯했다. 마힌드라는 쌍용차 인수자금으로 총 5225억원의 자금을 투자했다. 이후 두 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1300억원을 추가 투입하고 소형 SUV 티볼리, 코란도, 렉스턴 등 신차 개발 지원에 나섰다.

이렇게 탄생한 티볼리는 소형 SUV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면서 2016년 9년 만에 쌍용차를 흑자 전환으로 이끈 효자 모델로 거듭났다. 하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쌍용차는 이듬해인 2017년부터 다시 휘청이기 시작했다. 계속된 적자에 신차 개발 여력은 줄었고, 소비자도 점차 외면하기 시작했다. 판매가 감소하자 신차를 선보일 여력은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쌍용차는 2016년 4분기 이후 15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다.


올 4월 가수 임영웅을 모델로 기용한 올해는 판매량이 부쩍 늘어 흑자 전환도 기대됐다. 쌍용차는 지난달 내수·수출 포함 총 1만1859대를 팔아 올해 처음으로 1만1000대 벽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10여년간 지속해온 경영난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올해 당장 갚아야 하는 대출 원리금만 1650억원이지만 마힌드라가 쌍용차에 투입한 자금은 3년간 최대 400억원뿐이다.

앞서 마힌드라는 올해 초 2300억원 규모 자금지원을 추진했지만,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자 지원 계획을 철회했다. 쌍용차에 향후 3년간 최대 400억원만 투입하고 75%에 달하는 지분도 정리하겠다며 사실상 손을 떼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힌드라가 보유한 쌍용차 지분을 인수할 새 투자자를 찾는 작업이 시작됐지만, 난항이 이어지며 결국 쌍용차의 유동성은 한계에 달했다. 그 끝은 11년 만의 회생절차 신청이었다.

쌍용차는 전날 "경영상황 악화로 지난 15일 약 600억원 규모의 해외금융기관 대출금을 연체해 금융기관에 만기연장을 협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만기가 도래하는 채무를 상환할 경우 사업운영에 막대한 차질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돼 불가피하게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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