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철 교수 "팬데믹, 경기둔화보다 무서운 장기충격 따로 있다" [노경목의 미래노트]

입력 2020-12-19 00:26
수정 2020-12-19 15:05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에 몇 안되는 보건경제학자 중 한명이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의 대유행이 국가 경제와 개인 전 생애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분석했다.

그런 점에서 홍 교수는 최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미래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는데 가장 적합한 학문적 배경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백신이 세계 각국에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인류가 내년이면 코로나19를 극복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그 이후의 삶이 어떤 모습이 될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비관적인 전망 중 하나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며 세계 경제가 거듭된 팬데믹에 빠지는 것이다.

홍 교수는 "실제로 그같은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도 "팬데믹이 반복된다면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은 저발전 상황에 세계 경제가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회적 자원 소모시키는 전염병 유행▷하필이면 왜 아프리카인가.

"아프리카 경제의 발전을 발목 잡는 요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전염병의 반복적인 유행이다. 아프리카를 보건경제학 측면에서 연구해보면 일단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노동력이 심각한 손실을 입는다.

단기적으로 사망 위험이 커질 뿐 아니라 노동생산성이 저하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의료 지출도 상당히 늘어난다. 저개발 국가들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제한된 가운데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그에 대응하기 위한 막대한 지출을 강요 받게 되는 것이다.

과거 한국의 고도성장도 전염병을 퇴치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한국전쟁 후 콜레라를 비롯해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던 것을 20~30년 내에 제어했다.

아프리카식 함정에 빠질 뻔 했던 것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인적자본을 늘리고 본격적인 고도성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저개발국의 일로만 여겼던 감염병 유행에 따른 경제 타격이 선진국에서도 발생했다.

"사실 선진국들은 그동안 감염병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해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종플루를 비롯한 몇 차례 전염병 유행이 있었지만 큰 타격 없이 잘 제어해왔기 때문이다.

이같은 자신감이 역설적으로 코로나19에 따른 피해를 키웠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도 경제활동이 활발했고, 그로 인한 격리나 봉쇄를 준비하지 못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후진국보다 선진국에서 오히려 컸다고 볼 수도 있다."

▷세계 경제를 수렁에 빠뜨릴 정도의 보건위기가 실제로 반복될 수 있을까.

"코로나19와 비교할 수 있는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행한 전염병은 100년 전 스페인 독감 정도다. 그만큼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과 같은 팬데믹이 5년이나 10년 주기로 반복되는 것은 극단적인 가정에 가깝다. 최악의 시나리오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다." 코로나 후유증, 생각보다 길 수도▷코로나19 유행과 관련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다른 점이 있다면.

"팬데믹을 경험한 세계 각국에 장기적으로 인적 자원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태아나 영유아 상태에서 감염병에 걸린 이들은 전 생애에 걸쳐 건강에 악영향을 받았다는 결과가 많다.

감염병과 무관해 보이는 만성질환의 발병이 잦거나 발병시점이 앞당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능과 교육수준도 그같은 시기를 거치지 않은 세대에 비해 낮았다.

이같은 인적 자본의 하락은 국가 경제에도 장기적인 악영향으로 작용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코로나19에서 쉽게 회복된다고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인가.

"1918년 스페인 독감과 관련된 연구가 많았다. 당시 젊은 여성들이 특히 많이 걸렸었는데 그중에서도 임신부가 적지 않았다. 이후 여러 나라에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스페인 독감에 걸린 어머니에게 태어난 집단이 성인이 됐을 때 교육수준이 낮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연구를 한적이 있다. 스페인독감은 1918년 후반 한반도에 유입돼 1000만이 채 안되던 당시 인구 중 400만명이 감염되고 10만명이 사망했다.

1960년 인구 조사를 기준으로 당시 태어난 사람들을 살펴봤더니 스페인 독감 유행 직전 및 직후 세대와 비교해 교육수준이 유의미하게 낮았다. 이처럼 장기적인 영향까지 고려해보면 감염병 퇴치가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아울러 감염병 유행이 잦은 개발도상국의 빈곤도 이해할 수 있다." 다음 팬데믹 대비하려면 ▷코로나19 이후에도 감염병 대처 및 방역에 과거보다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될 수 밖에 없겠다.

"방심하는 순간 감염병은 언제든 다시 사회를 뒤덮을 수 있다. 퇴치됐다고 생각했던 결핵이 2000년대 들어 다시 유행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전염병 유행은 부정적인 효과만 있을까.

"일부 연구에 따르면 감염자수가 일정 수준에서 통제된다면 국민 건강 전반이 좋아진다고도 한다. 당장 외부활동이 감소하면서 음주가 줄어들고 그만큼 음주에 따른 사고도 적어진다.

불황일수록 건강에 대한 투자 시간이 늘어난다는 연구도 있다. 경기가 좋으면 운동을 하거나 병원 갈 시간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 파산과 실업에 따른 파괴적인 영향까지 감안하면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클 수 밖에 없다. 소득이 줄어들어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자살 문제도 나타난다."

▷다음 전염병 유행에 따른 경제손실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전염병 유행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능동적인 대응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규제가 없어야 한다. 특히 산업 사이의 규제가 중요하다.

재앙을 맞아 사회적 자원이 필요한 부분으로 흘러가야하기 때문이다. 전염병에 저항할 혁신이 출현하더라도 규제에 막혀 자원을 얻지 못하면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없다.

코로나19는 의학 기술같은 부분부터 확진자 이동 등 개인 정보에 대한 것까지 어떻게 사회적 자원을 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기점이 됐다. 이같은 고민에 따른 결과를 체계화해야 이후 전염병 유행에 따른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