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환자에게 지방간이 '필연적 존재'인 이유

입력 2020-12-18 10:50
수정 2020-12-26 01:46

지방간은 간에 붙은 지방이 전체 간 무게의 5% 이상인 상태다. 매년 21%씩 증가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술 마시는 습관과 상관없이 과식 등 생활습관 때문에 발생한다. 비만 환자는 지방간 발생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5년 비알코올성 지방간으로 국내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는 2만8368명이었지만 지난해 9만9616명으로 5년 새 25% 넘게 증가했다. 과거에는 50대 이상에게 많은 질환이었지만 최근에는 30대 젊은 지방간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젊은 층이 배달음식이나 인스턴트 등 고지방 식단을 많이 섭취하는 것을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비만은 지방간 환자가 늘어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복부 비만이면 지방간 발생률이 최대 2.2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비만인 사람에게 왜 지방간이 많은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한국인 연구진이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내놨다.

김종숙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팀은 장에서 분비되는 특정 호르몬(FGF19)이 지방을 만드는 데 관여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11월 24일자에 발표했다. FGF19는 간세포에서 지방을 만드는 유전자 발현을 억제한다. 김 교수팀 연구 결과 비만인 사람은 FGF19 활동력이 떨어져 지방간이 많이 생겼다.

지방은 몸속 대부분의 장기에 있다. 적당한 양은 내장기관을 보호하는 등 유용한 역할을 한다. 간은 예외다. 간에 지방이 달라붙으면 염증 반응이 일어나기 쉽다. 심하면 간이 딱딱해지는 간경화도 발생할 위험이 있다. 인체가 간에 지방이 생기지 않도록 여러 물질을 분비하는 이유다. FGF19도 그중 하나다.

대개 밥을 먹고 나면 순간적으로 당 수치가 올라간다. 이때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돼 당을 떨어뜨린다. 이 과정을 거쳐 분해된 영양분은 지방으로 저장된다. 식사 후 공복 상태가 길게 이어지면 지방이 만들어지는 속도는 점차 느려진다.

지방이 생기는 과정에 대한 연구는 많았다. 하지만 지방이 만들어지는 것을 어떻게 억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 김 교수팀은 동물 모델을 활용해 사람의 FGF19와 같은 기능을 하는 쥐의 FGF15가 지방간 생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쥐가 식사를 마친 뒤 3시간 안에 FGF15가 분비되는 것을 밝혀냈다. FGF15가 분비되면서 지방 생성에 관여하는 인슐린 분비는 줄어들었다. 연구진 표현에 따르면 쥐가 ‘식사’ 상태에서 ‘공복’ 상태로 돌입한 것이다.

하지만 비만 쥐는 이런 FGF15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비만 쥐는 FGF15가 인슐린 수치를 정상 수준까지 낮추지 못했다. 간세포 내부에서 지방 생성 유전자도 억제되지 않았다. 공복 상태에 들어서면 인슐린 분비가 줄면서 지방 생성을 막아야 지방이 지나치게 축적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이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간에 지방이 쌓인다.

김 교수는 “비만과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에게서 왜 지방이 비정상적으로 쌓이는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했다”며 “추후 비만이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질환에 대한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