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징계 결정서' 살펴보니…법조계 "'정말 이게 다인가' 허탈"

입력 2020-12-17 13:16
수정 2020-12-17 13:30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검사 징계위원회가 이른바 ‘판사 사찰 문건’에 대해 “재판부를 공격, 비방하거나 조롱하여 우스갯거리로 만들 때 활용할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작성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채널A 사건 감찰·수사 방해’ 의혹과 관련해선, 윤 총장이 과거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때와 정반대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징계 사유들을 종합할 때 해임 처분도 가능하지만,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가 유례 없는 사건이라 많은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 ‘정직 2개월’을 내렸다는게 징계위의 주장이다. “尹,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17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검사징계위원회 심의·의결 요지’ 문건에 따르면 징계위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제기한 윤 총장의 6개 혐의 중 4가지 혐의에 대해 징계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먼저 ‘주요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에 대해 재판부의 정치적·이념적 성향을 단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해당 문건에는 A판사가 과거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를 요구하며 경찰과 충돌한 시위대에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판결한 바 있다는 등의 대목이 나온다.

징계위는 이를 “이 부분이 전달하려는 정보는 ‘검사는 실형을 선고했음에도 전교조에 대한 온정적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라며 “이는 ‘전교조 판사’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당 재판부에게 불리한 여론구조(프레임)를 형성하면서 재판부를 공격, 비방하거나 조롱하여 우스갯거리로 만들 때 활용할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작성·배포됐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윤 총장에게 법률 위반 혐의마저 있다고 판단했다. 징계위는 “법관의 개인정보를 위법하게 수집해 제3자에게 제공한 것으로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행위”라며 “직권남용의 점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직무의 범위를 벗어나 부당한 지시를 하는 행위는 ‘검찰청 공무원행동강령’ 위반”이라고 말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소유지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나열하기만 했을 뿐인데, 징계위가 윤 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상상력을 더해 ‘낙인찍기 문건’이라고 규정했다”고 말했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관심법’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의원들은 ‘정치 발언’으로 이해”징계위가 윤 총장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근거도 빈약하다는 평가다. 징계위는 먼저 윤 총장의 “제가 소임을 다 마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은 천천히 퇴임하고 나서 한번 생각해 보겠다”는 국회 국정감사 발언을 문제 삼았다.

징계위는 “해당 발언에 ‘정치’라는 말이 일체 들어가 있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여러 국회의원은 윤 총장의 발언을 퇴임 후 정치활동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사표시로 받아들였고, 많은 국민도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 현직 검사는 “많은 검찰 구성원들은 ‘퇴임 후 봉사’ 발언을 고위공직자가 할 수 있는 원론적 답변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고 답했다. 윤 총장에 대해 유죄심증을 갖고 있는 징계위가 해당 발언을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징계위는 “윤 총장이 2019년 12월 한 일간지의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을 인지하고 명단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보도됐다”며 “그러나 올해 8월 이후 동일 또는 유사한 노력을 하였다는 자료는 제출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검찰 안팎에선 윤 총장이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 자신의 이름을 빼 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오히려 해당 사실이 윤 총장이 정치적 중립의무를 지키려 노력했다는 점을 방증한다는 얘기다. “한동훈 사건, 회피 안해 부적절”
징계위는 ‘채널A 사건 수사·감찰 방해 의혹’도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먼저 윤 총장이 자신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이 연루된 이 사건에서, 즉각 수사지휘를 회피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봤다.

징계위는 “윤 총장과 한 검사장의 관계는 그동안의 근무관계, 통화내역이나 카카오톡 메시지 통신내역(2020년 2월~4월 동안 약 2700회 연락)에 비춰 보더라도 매우 밀접한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스스로 회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총장이 한 검사장을 비호하고자 관련 수사와 감찰을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징계위는 “윤 총장은 신속한 압수수색이 가능한 감찰을 중단시키고 인권부로 하여금 언론사(채널A)의 협조를 받아 증거를 받도록 지시했다”며 “그동안 관련자들의 시간벌기와 증거인멸이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이번 징계위 결정서에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하던 중 상부의 외압을 폭로한 2013년의 윤 총장도 소환됐다. 징계위는 “윤 총장이 채널A 사건에 임하면서 보인 태도는 불과 몇 년 전의 모습과는 정반대”라며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하지 못하게 했던 윤 총장의 당시 상사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법조계 “허탈할 정도”이 같은 비위사실들을 종합할 때 윤 총장에 대해 최고수위 징계인 해임도 가능했다는게 징계위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로서 유례가 없는 사건이고, 이 점에서 많은 특수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윤 총장에 대해 최대한 선처를 베풀어줬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징계위는 “어떤 경우에도 검찰총장의 임기제는 보장돼야 하고, 그것이 검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 기여할 것이라고 봤다”며 “윤 총장에 대한 서울행정법원의 직무집행정지 처분 집행정지 결정의 취지, 징계청구 이후 형성된 검사들 다수의 의견도 충분히 존중했다”고 했다.

반면 한 법조계 관계자는 “윤 총장에 대해 징계를 의결한 사유가 ‘정말 이게 다인가’라고 생각될 정도로 허탈하다”고 말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