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한국판 '포템킨 빌리지'

입력 2020-12-17 18:00
수정 2020-12-18 00:24
1787년 제정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가 새로 합병한 크림반도 시찰에 나섰다. 여제가 드네프르강을 따라 배를 타고 둘러볼 지역을 총괄하던 이는 그리고리 포템킨 공(公)이었다. 그는 주변의 누추한 풍경을 감추기 위해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그린 나무판을 강변에 줄지어 세워놓고 여제의 눈을 가렸다고 전해진다. 이후 포템킨의 이름을 따서 실제의 추한 모습과는 딴판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을 두고 ‘포템킨 빌리지(Potemkin village)’라고 부르게 됐다.

포템킨의 ‘그림 마을’은 과장이 적잖게 포함된 일화지만 역사적으로 권력자의 환심을 사거나 외부인을 속이기 위해 현실의 치부를 분칠한 사례는 많았다. 1933년 대기근이 닥친 옛 소련은 처참한 식량난을 외부에 철저히 감췄다. 이런 참상을 보지 못한 프랑스 좌파 정치인 에두아르 에리오는 “꽃이 만발한 정원”으로 소련 사회를 묘사했다. 나치 독일은 적십자에 유대인 강제수용소 테레지엔슈타트를 ‘천국의 게토’라고 소개했다. 북한은 개성시 기정동에 체제선전용 마을 ‘평화촌’을 건설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포템킨 빌리지’를 연상케 하는 일이 벌어져 구설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 화성시 동탄의 공공임대주택을 방문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데 4억5000여만원을 들인 것이 드러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둘러본 임대주택 두 채를 꾸미는 인테리어 비용만 4290만원에 달했다. 곰팡이나 누수 같은 각종 하자로 고생하던 해당 단지 입주민들의 처지는 아랑곳 않던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대통령 방문 당일 새벽까지 드릴 공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사례뿐 아니라 그간 문 대통령의 각종 대외활동은 ‘보여주기’라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과 구면인 지지자를 일반 시민으로 둔갑시킨 ‘맥줏집 대화’부터 국군 유해를 영상쇼의 소재로 활용한 ‘6·25 70주년 기념행사’, 흑백화면으로 중계한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까지 한 손에 꼽기 힘들 정도다. 대통령 부인이 전통시장을 방문했을 때는 건어물 가게에서 팔지 않는 꿀까지 부랴부랴 구비했다.

이런 일련의 보여주기식 쇼는 탁현민 의전비서관이 기획·연출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대중의 눈길을 끌 만한 화려한 이벤트로 이미지 포장에만 급급해선 정부 정책이 국민 공감대를 얻기는커녕 진정성마저 의심받을 수 있다. ‘포템킨 빌리지’는 기껏해야 추한 현실을 잠시 덮었을 뿐이다. 쇼가 너무 잦으면 식상해진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