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불치하문

입력 2020-12-15 17:26
수정 2020-12-16 00:12
지난주 제주에 볼일이 있어서 김포공항으로 갔다. 예정 시간보다 늦어져 짐을 들고 무조건 카운터에서 신분증을 내미니 저쪽 컴퓨터로 가서 티켓을 받아 오라고 한다. ‘뭘 하라는 소리야?’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며 컴퓨터 앞에 가서 일단 시작 버튼을 눌렀다. 예약번호를 넣으라고 한다. 예약할 때 받은 번호를 넣으려니 글씨도 잘 보이지 않고 손가락은 왜 자꾸 옆 글자를 치게 되는지. 겨우 탑승권을 받아 짐을 부치고 비행기를 타러 가면서 ‘컴퓨터를 못 하면 비행기도 타기 어려운 시대가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학원에 가서 MS-DOS 운영체제(OS)를 배웠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컴퓨터로 은행 일을 보려면 공인인증서를 사용해야 하는데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기 일쑤고, 적어 둬도 어디에 적어 뒀는지 생각이 안 나 종종 은행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올해 연말정산을 할 때 본인 인증은 공인인증서 대신 이동통신사의 본인 인증 서비스 PASS를 사용해 여섯 자리 핀번호를 넣거나 지문 인식 또는 홍체 인식으로 한다고 하니 이건 또 어떻게 하는 건가. 음식점에 가면 작은 모니터에 내 QR코드를 대라고 한다. 우물정자(#)를 치고 들어가서 QR코드 체크인을 치면 QR코드가 나오는데, 서너 번 해보고 나서야 제대로 할 수 있게 됐다.

올해 모든 강의는 비대면으로, 강의 성격에 따라 줌(ZOOM)과 LMS라는 시스템을 사용했다. 줌 프로그램은 인터넷 연결만 되면 어디서 해도 상관이 없는데 기어코 노트북을 들고 강의실로 갔다. 학교에서 하면 언제든 담당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일종의 안전 막을 설치하기 위해서다.

뉴스를 보니 5년 후에는 개인이 드론을 타고 다니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그래? 그러면 미리 연습을 해둬야지.’ 넓지도 않은 집에서 드론 연습을 해본다. 드론은 한곳에 앉아 모니터가 된 휴대전화 화면만 보고 조종해야 하는데 드론을 앞세우고 드론 뒤에서 드론을 몰고 간다. 이게 무슨 드론 조종인가?

이제는 휴대전화에 대고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면 “누구에게 걸어드릴까요?”라고 되물어온다. 음악을 틀어 달라면 음악을 틀어준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웬만한 일은 앱을 깔면 거의 해결된다.

나는 시대를 앞서가지는 못해도 뒤처지지는 않겠다는 굳은 각오로 살고 있지만 마음 같지 않다. 뛰어다니면서 얼굴을 보고 일하는 것이 편했던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하이테크 시대를 살아내려니 버겁다. 다행히 그걸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하나 터득했다. 후배에게 묻는 거다. 공자가 말하지 않았는가. “배움을 즐기고 모르면 후배에게 물어라. 묻는 건 흠이 아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