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서울 둔촌동에 30석 규모 음식점을 연 A씨는 올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혼자서 주방과 배달 업무를 도맡고 있다. 지난 1월 대비 매출이 반토막 나자 아르바이트생 두 명부터 해고했다. 적자를 버티다 못해 10월 내놓은 가게에는 두 달 넘게 새 주인이 오지 않고 있다. 가까스로 구했던 매수자는 ‘코로나19 재확산’을 이유로 지난달 말 잔금 지급을 앞두고 계약을 해지했다. 그는 “업종을 바꾸려고 다른 상가를 알아봤지만, 보증금 5000만원을 낼 돈이 없어서 가게를 억지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고위험시설, 폐업 급증올해 폐업 수가 급증한 업종은 대부분 고강도 방역 조치가 내려진 곳이다. 주로 클럽, 노래방, 유흥주점, 방문판매업 등 11개 고위험시설에서 폐업이 두드러졌다.
폐업 증가폭이 가장 큰 업종은 렌털상품과 화장품 등을 파는 방문판매업이다. 2월부터 11월까지 폐업한 방문판매업체는 3807곳으로 전년 동기(1131곳)와 비교해 세 배 넘게 늘었다. 서울 내 방문판매업은 6월부터 11월 초까지 5개월간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전국 거리두기 단계가 1단계로 하향 조정된 10월에도 11개 고위험시설 중 방문판매업은 영업중단 조치가 유지됐다. 60세 이상 고령층 이용률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동안 수차례 집합금지 명령을 받은 단란주점 유흥주점 등도 폐업 수가 크게 늘었다. 클럽 등 유흥주점의 폐업 수는 767건에서 964건으로 25.7% 증가했다. 단란주점은 같은 기간 405건에서 639건으로 57.8% 급증했다.
이들 업종은 거리두기 2단계부터 집합금지 대상이다. 다만 2단계 조치 이전부터 수도권 유흥시설은 집합금지 명령이 여러 차례 있었다. 서울시는 3월 22일~4월 5일, 4월 8~20일, 5월 9일~6월 14일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감염 등 집단감염 사례가 발생해서다. 거리두기 2단계 조치가 내려진 8~9월과 지난달 24일 이후로도 계속 닫고 있다. 최원국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사무국장은 “한번에 쭉 쉬지 않고, 3월 말부터 2주 단위로 영업을 했다 안 했다 반복하니 직원 인건비만 고스란히 나가고 있다”며 “임차료가 많이 밀려서 문을 못 여는 곳도 많고, 내년 말까지 장사해도 손실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적자 버티며 폐업 유예”고위험시설 업종은 올해 창업보다 폐업이 더 많기도 했다. PC방(인터넷컴퓨터게임시설제공업)은 2~11월 2235곳이 창업하고 4008곳이 문을 닫아 1773곳이 순감소했다. 8월 16일부터 한 달간 영업 중단한 PC방은 올해 폐업이 전년 동기 대비 47.75% 늘었다. 1379건이던 오락실(청소년게임제공업) 창업 수도 688건으로 반토막 났다. 방문판매업(-1346곳) 노래방(-1195곳) 유흥주점업(-703곳) 단란주점업(-477곳) 등도 올해 업체 수가 순감소했다.
반면 술집 식당 등이 있는 일반음식점과 휴게음식점은 오히려 폐업 수가 전년 대비 줄었다. 일반음식점은 4만7484건에서 4만2990건, 휴게음식점은 1만7627건에서 1만6116건으로 각각 9.5%, 8.6% 줄었다.
다만 영업 사정이 작년보다 나아진 것은 아니라고 업주들은 입을 모은다. 남은 임차료와 대출금, 철거 비용 탓에 폐업을 ‘유예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올해 2~11월 일반음식점과 휴게음식점의 신규 창업 수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4%, 9.2% 줄었다.
서울 가양동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업주는 “지난 7월 식당에서 호프집으로 업종 변경을 하면서 2000만원을 대출받았다. 빚을 갚을 때까지는 가게 문을 닫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폐업할 때 권리금을 몇 푼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지금은 권리금을 새 임차인에게 받기 어렵다”며 “임차 기간이 남은 상태에서 폐업을 하면 남은 기간만큼 임차료를 다 돌려받지 못한다”고 했다.
양길성/최다은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