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첫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장. 다수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결 법안 목록에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 ‘기업규제(공정경제) 3법’이 포함된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날 오전까지만해도 당 지도부가 정무위원회 등 소관 상임위 의원들을 대상으로 “법안 한개당 3명씩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다”며 신청자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당의 방침은 본회의 직전 열린 의원총회 이후 돌연 바뀌었다는 게 의원들의 전언이다. 의원총회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의원총회 최대 현안은 이날 새벽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법 제정 이후 40년만의 전면 개편안이자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법안이었다. 국민의힘은 이번 정기국회의 법안 통과를 막겠다며 안건조정위원회에 법안을 회부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겠다던 당초 당론을 수차례 번복하면서 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고 있었다.
정무위 간사인 성일종 의원(사진)이 먼저 이런 상황을 개략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민주당은 국민들이 보고 있는 중요 법안에 대해 (범여권인) 정의당까지 속여서 뒤집는 사기쇼를 벌였다”며 민주당을 맹비난했다. ‘전속고발권 유지’에 대한 입장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으면서 공정거래법을 강행 처리한 절차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본회의에 상정된 공정거래법 내용에 대해선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규정은 기업들의 사회 공헌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면서도 “일감몰아주기 규제 조항은 공정한 룰을 만들기 위해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고도 설명했다. 찬성과 반대할 조항들이 섞여 있다는 취지다.
그러자 김종인 위원장(사진)이 나섰다. 그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전속고발권 폐지’인데 민주당은 이를 대선공약으로 약속하고도 결국 (내가 공언한 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민주당은 믿을 수 없는 정당”이라고 비난했다. 성 의원과 동일하게 민주당을 공격했지만 내용은 달랐다. 민주당이 “당연히 국민들에게 약속한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였다. “공정경제 3법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는 평소 소신과 궤를 같이 한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추경호 의원(사진)도 발언권을 신청했다. 기획재정부 1차관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으로 이 분야 전문가다. 그는 “전속고발권이 유지된 것은 ‘기업 관련 수사가 남발될 수 있다’는 경제계 우려사항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전속고발권 폐지가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완곡하게 반박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본회의 표결을 코앞에 두고 도대체 당의 포지션(입장)은 뭐냐, 필리버스터까지 하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당의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면 ‘자충수’가 될 수 있다”라고도 경고했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주호영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소관 상임위 간사와 협의, 기업규제 3법에 대한 필리버스터 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의원총회에 참석한 한 초선 의원은 “지난 수개월동안 그렇게 논란이 됐던 경제 3법에 대한 입장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한 상황을 보고 씁쓸했다”고 했다. 4선 중진인 권영세 의원은 “경제 3법 뿐 아니라 가덕도신공항, 국회 이전 등 주요 정치 쟁점에 대해 내부 입장차가 제대로 조율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해 당 지도부가 주도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