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이 생활을 하는 데도 나름의 계획을 갖고 씀씀이를 조절한다. 가장이 벌어오는 수입으로 적당한 집에 거주하며 먹고 입고 자녀의 교육비를 지출하곤 한다. 1년 단위의 연봉을 기준으로, 다달이 받는 월급을 다 생활비로 쓰는 게 아니라 일부는 노후를 위해 저축하고 몇 달 동안 조금씩 따로 모아둔 돈으로 여행을 가기도 한다. 때로는 더 큰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거액의 빚을 얻은 뒤 매달 일정액의 원리금을 상환하기도 한다.
나라의 살림살이도 마찬가지다. 국민으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을 바탕으로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국방비를 쓰거나 행정서비스 비용을 지출한다.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연구개발(R&D)에 거액을 쓰기도 하고 KTX처럼 대규모 국책사업을 위해서는 몇 년 동안 매년 일정 금액을 투입하기도 한다. 이처럼 정부가 돈을 마련하고 사용하는 활동, 즉 정부의 살림살이를 재정(財政)이라고 한다.
재정은 돈을 마련하는 재정수입(세입)과 돈을 사용하는 재정지출(세출)로 구성되는데, 한 해 동안의 활동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매년 9월 정기국회 첫날 제출하는 ‘예산’은 다음 해의 세입과 세출 등 재정활동 계획이다. 전년도의 재정활동 결과는 정기국회 시작 전에 ‘결산’으로 확정되는 것이 원칙이다.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은 558조원으로 올해 예산안보다 45조7000억원(8.9%) 늘었다. 내년 한 해 동안 정부가 558조원을 쓰겠다는 의미이며 그만큼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걷거나, 세금만으로 충당이 어려우면 국채를 발행해 조달해야 한다. 전년 대비 예산 증가율이 7%를 넘는 ‘초슈퍼 예산’은 내년까지 4년째 편성된 것이다. 정부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내년도 세금 수입만으론 충당하기 어렵자 93조5000억원의 국채발행이 예고되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말 기준 국가부채는 956조원으로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7.3%로 올해 추정치(43.9%)보다 3.4%포인트 높아지게 된다.
가계도 마찬가지지만 정부도 당해연도에 벌어들인 세입만큼 지출하는 게 바람직하다. 기업도 빚이 많으면 파산하는 것처럼 나라 곳간이 비어 재정수지 적자가 계속 쌓이면 국가부도에 이를 수도 있다.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정부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기는 하다. 내년도 예산이 어떻게 짜이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4, 5면에서 알아보자.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