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회사가치 180억 달러을 인정받아 자금을 조달했었는데…놀랍다"
10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 상장한 숙박공유앱 에어비앤비의 브라이언 체스키 창업자가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날 오후 1시38분 첫 거래가 시작된 에어비앤비 주식은 주당 148달러로 거래를 시작해 144.71달러로 마감했습니다. 68달러인 공모가 기준 112.81% 급등한 겁니다. 주가는 한 때 165달러까지 폭등했습니다.
에어비앤비의 시가총액은 시초가 기준으로 1016억 달러였고, 종가로도 999억9500만 달러로 약 1000억 달러입니다. 발행이 예상되는 주식까지 포함한 희석 시가총액(fully-diluted valuation)은 1020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에어비앤비의 질주는 이날 하루 종일 뉴욕 증시의 화제가 됐습니다. 월가도 놀란 건 마찬가지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전날 도어대시가 86% 이상 급등한 탓에 에어비앤비도 어느 정도 오늘 것이라고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시초가부터 1000억 달러를 넘을 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이날 에어비앤비의 시총은 세계적 호텔 체인인 메리어트(420억 달러)와 힐튼(290억 달러), 델타항공(270억 달러)을 더한 것보다 많습니다.
이렇게 에어비앤비 주가가 치솟은 원인은 여섯 가지 정도로 분석됩니다. ① 무서운 개인 투자자
에어비앤비는 당초 44~50달러대의 공모가를 희망했습니다.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공모가 밴드는 56~60달러로 높아졌고 최종 공모가는 68달러로 이 수준도 뛰어넘었습니다. 이런 공모가는 기관투자자 수요를 기반으로 정해졌습니다. 이날 에어비앤비와 기존 기관투자자들은 5200만주를 공모가에 매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첫 거래가 시작되자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가 폭발적으로 몰렸습니다. 개인들의 힘이 에어비앤비의 주가를 첫 날 112.81% 급등시킨 겁니다.
요즘 월가의 예측은 자주 틀립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젊은 개인 투자자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해서 그런 점이 많습니다.
뉴욕 증시는 지난 수십 년간 개인 투자자들은 감소하고 기관투자자가 주도하는 시장이었습니다. 연기금과 상장지수펀드(ETF)를 앞세운 자산운용사들이 시장을 이끌었죠.
하지만 2013년 무료 주식거래앱인 로빈후드가 등장하고, 작년 말부터는 피델리티, 이트레이드 등 온라인 기반 증권사들이 수수료를 무료로 전환한 뒤 개인 투자자가 폭증했습니다.
지난 3월 코로나 사태로 주가가 폭락하자 월가는 일제히 조심스런 접근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뉴욕 증시는 3월 말 이후 60% 가량 수직 상승했습니다. 젊은 로빈후드 투자자들에게 익숙한 줌 비욘드미트 펠로톤 스노우플레이크 등은 몇 백 퍼센트씩 급등하면서 나스닥은 연초에 비해서도 40% 이상 올랐습니다.
월가는 처음엔 "정부가 나눠준 부양책 수표로 불장난을 하고 있다", "스포츠가 중단돼 스포츠도박을 못하니까 증시로 몰렸다.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것이다"는 등 부정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월가가 뉴욕 증시에 대해 시각을 긍정적으로 바꾼 건 일러야 지난 5월부터였습니다. 개인투자자들보다 두 달 이상 느렸습니다. 최근 개인투자자들은 옵션시장에도 대거 진입했습니다. 최근 옵션 거래액이 20년래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소액투자자들의 주식 콜옵션 매수가 급증한 덕분입니다.
② 테슬라 효과
기관투자자들은 지금 테슬라를 놓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오는 21일 S&P 500 지수 편입을 앞두고 막대한 돈을 들여 올해 600% 넘게 오른 테슬라 주식을 사들여야하는 겁니다.
월가 관계자는 "본 투자자들이 에어비앤비, 도어대시 등 초대형 유니콘들이 상장하는 시점에 향후 지수 편입 혹은 지수 편입을 앞둔 주가 상승을 고려해 미리 사들이는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에어비앤비는 작년까지 막대한 투자를 퍼붓는 방만 경영(?)을 하다가 올해 코로나 한파를 맞은 뒤 엄청난 비용 절감에 나섰습니다. 전체 직원의 4분의 1에 가까운 1900명을 해고하고 마케팅 비용을 대폭 줄였습니다. 덕분에 지난 3분기 흑자로 전환했습니다. 내년 경제가 정상화된다면 '4개 분기 연속 흑자'라는 S&P 500 지수 기준을 맞추고 내년 이맘 때 지수 편입이 될 가능성도 조금은 있습니다. 시총이 최소 82억 달러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은 이미 가뿐하게 달성했으니까요.
올해 기업공개를 한 주식 가운데 지수 편입이 기대되는 종목이 줌(시총 1130억 달러), 스노우플레이크(1120억 달러), 스퀘어(960억 달러) 등입니다.
다만 테슬라에 대해선 지수 편입을 앞두고 너무 올랐다는 이유로 매도를 권유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테슬라) 강세론자였던 뉴스트리트 리서치의 피에르 페라구 애널리스트는 테슬라의 투자등급을 '매수'에서 ''보유'로 낮추면서 S&P 500 지수 편입에 앞서 지금이 차익을 실현하기 좋은 시기라고 주장했습니다. 모건스탠리의 애덤 조나스 애널리스트도 이날 테슬라의 목표주가 540달러를 고수하면서 향후 10% 주가가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실제 S&P에 편입되면 일반적으로 주가가 상승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건 아닙니다. 네드데이비스 리서치에 따르면 1973~2018년 사이에 지수에 포함된 기업의 주가는 통상 편입 1년 뒤 주가가 하락했습니다. ③ 강력한 경제 정상화 기대
이날 발표된 경제 지표는 좋지 않았습니다. 지난 5일로 끝난 주의 미국의 실업급여 청구자 수는 전주보다 13만7000명 급증한 85만3000명에 달했습니다.시장 예상치인 72만~73만 명을 훨씬 웃돌았습니다. 지난달 28일로 끝난 주간까지 일주일 이상 연속으로 실업보험을 청구한 사람의 수도 23만 명 증가한 575만7000명을 기록했습니다. 확실히 경제 봉쇄가 늘어나면서 고용 시장이 타격을 받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이날 코로나 사망자는 하루 3100명을 넘었습니다. 게다가 민주당과 공화당간의 추가 경기부양책 협상도 타결이 불투명합니다. 이날 미 하원은 당초 11일로 만료될 예정이던 예산안을 오는 18일로 일주일 연장하는 단기예산안을 가결하고 다음주 화요일까지 휴회에 들어갔습니다. 협상 시한을 늘린 겁니다. 폴리티코는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보좌관이 '공화당은 초당파 부양책을 못 받아들인다'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이런 부정적 소식들을 무시했습니다. 이날 다우는 0.23%, S&P 500 은 0.13%씩 내렸습니다만 나스닥의 경우 0.54% 올랐습니다. 나스닥 상승은 전날 2% 가까이 떨어진 데 따른 반발 매수 수요가 유입된 덕분으로 해석이 됩니다.
뉴욕 증시의 분위기는 경제 정상화 테마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백신이 풀리고 있는 이상, 경제 정상화는 시간문제"라며 "몇 달만 견디면 더 오를 텐데 좋은 주식이라면 지금 팔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④ 달아오른 기업공개(IPO) 시장
현재 뉴욕의 IPO 시장에는 돈이 몰려 있습니다. 올해 초 40억 달러이던 르네상스 IPO 상장지수펀드(ETF)의 운용자산은 현재 500억 달러를 넘고 연간 수익률은 106%에 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회상장이나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한 기업인수합병회사(SPAC)도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올해 신규 상장된 SPAC이 모집한 자금만 750억 달러에 달해 지난해 전체 규모인 135억 달러의 다섯 배가 넘습니다.
이날 에어비앤비가 100%가 넘게 올랐지만, 올해 IPO한 주식들의 공모가 기준 첫날 상승률로 따지면 10위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넘치는 자금 속에 새로 상장한 주식들이 첫날 급등했다는 뜻입니다.
⑤ 흥청이는 유동성
올해 코로나 팬데믹 극복을 위해 미 중앙은행(Fed) 등 세계 중앙은행들은 모두 9조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돈을 찍어내 금융시장에 뿌렸습니다.
이날 유럽중앙은행(ECB)는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팬데믹 긴급매입 프로그램(PPP) 규모를 1조8500억 유로로 기존 1조3500억 유로에서 5000억 유로 확대했습니다. 미 달러화로 따지면 6000억 달러가 더 투입되는 겁니다. PPP 자금의 순매입 기간도 내년 6월에서 최소 2022년 3월까지 연장했습니다.
Fed도 15~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ed)를 엽니다. 가능성은 낮지만 현재 월 1200억 달러인 채권매입 액수를 확대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⑥ 닷컴버블 당시 야성적 본능 나오나
닷컴버블이 터지기 직전인 지난 1999년 당시 한 해 500여개 회사가 상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거래 첫날 평균 60% 올랐습니다.
올해도 상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로블럭스 로빈후드 위시 등 여러 회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500여개에는 턱없이 못 미칩니다. 다만 상장 규모로 따지면 당시 이상으로 큽니다. 워낙 플랫폼 효과 등으로 '규모의 경제' 효과가 커진 덕분입니다. 이 때문에 IPO 시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돈은 올해 20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닷컴버블 때 나왔던 '야성적 본능'(Animal Spirit)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말이 조금씩 나옵니다. 물론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지적했듯이 경제 성장에는 이런 야성적 본능이 필요하기도 하지요.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