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환경논리에 막혀…'하동 알프스'도 좌초

입력 2020-12-11 17:09
수정 2020-12-18 16:19

지리산 일대를 관광지구로 개발하려던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가 환경단체의 극심한 반발을 넘지 못하고 사실상 좌초했다. 정부는 ‘한걸음 모델’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겠다고 나섰지만 환경단체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준 꼴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11일 한걸음 모델의 3대 우선 추진 과제 중 하나였던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한 결과 ‘사업 재검토’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전문가와 환경단체, 지역주민 등 20여 명이 참여하는 상생조정기구를 구성해 지난 6월부터 30회 가까운 회의를 했지만 조정에 실패했다.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는 윤상기 경남 하동군수가 2018년 지방선거에서 공약으로 내놓은 사업이다. 5년간 사업비 1650억원을 투입해 하동군 화개·악양·청암면 일대에 전기열차(12㎞), 케이블카(3.6㎞), 모노레일(2.2㎞) 등을 설치하고 지리산 형제봉에 호텔과 리조트를 지어 연간 10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구상이었다.


이 사업은 지난해 ‘규제특례 시범사례’로 선정되면서 속도를 내는 듯했지만 이내 환경단체의 반발에 부딪혔다.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가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는 지리산을 개발하면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들고나왔다. 여기에 지역 주민들마저 찬성 측인 ‘하동산악열차유치추진위원회’와 반대 측인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원회’ 등으로 나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기재부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지난 6월 이 프로젝트를 한걸음 모델 3대 우선 추진과제 중 하나로 선정하고 갈등 조정에 나섰다. 6개월간의 조정 시도 끝에 나온 결론이 ‘사업 재검토’다.

상생기구는 하동군의 사업계획안에 대해 결론을 도출하지 않았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나온 △호텔 등 위락시설 제외 △케이블카 사업 축소 △대규모 관광개발 방식 지양 △지속가능한 체류형 산림관광모델 도입 필요 등을 부분적으로 제시했다.

정부도 호텔과 리조트를 짓기 위해 하동군이 요청한 ‘산지관리법’ 및 ‘국유림의 경영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지 않기로 하고 논의에서 완전히 빼기로 방침을 정했다. 한걸음 모델을 통한 조정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동군은 법률 개정 없이도 추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사업계획을 대폭 축소해 재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축소한 사업계획을 마련한다고 해도 이 역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제적 타당성 및 환경영향 평가 등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림 관광 개발계획이 환경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중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리산은 이번 프로젝트 외에도 지난 20년간 전남 구례, 전북 남원, 경남 함양·산청 등이 케이블카 건립을 시도했으나 모두 무산됐다. 설악 오색 케이블카 사업도 지난해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좌초했다.

한걸음 모델이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한걸음 모델은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도입된 사회적 타협 메커니즘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인 타다와 기존 택시 간 갈등을 계기로 신사업과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해관계자 간 대립이 본격화하면서 정부가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이번 하동군 사례를 통해 이해당사자 중 하나가 물러서지 않고 입장을 고수하면 한걸음 모델은 ‘유명무실한 기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 정부가 강제로 갈등을 조정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산림관광과 함께 한걸음 모델의 3대 우선 과제로 선정됐던 도심 내국인 공유숙박도 영업일수 제한 규모를 두고 기존 숙박업자와 신규 사업자 간 갈등을 좁히지 못해 합의안 도출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또 다른 우선 과제였던 농어촌 빈집 공유숙박은 지난 9월 합의안이 도출됐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별로 숙박시설 운영 숫자를 제한하는 등 사업자의 당초 사업계획에 비해 대폭 축소된 형태로 통과돼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