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을 깨뜨린 음악가입니다. 당시에는 베토벤 음악이 난해한 ‘현대음악’이었겠죠. 몇 개 안 되는 선율로 완벽한 하모니를 창조했습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베토벤을 이렇게 바라봤다. 베토벤은 곡 전개가 다채로워 해석하기 까다로운 작곡가 중 한 명.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란 말을 듣는 그의 답변은 반대였다. “기술적으로는 연주하기 편한 작곡가입니다. 선율 구조가 단순하죠. 하지만 감정을 이끄는 힘이 엄청납니다. 정교하면서도 폭발적인데 과하지 않습니다. 군더더기가 없어요.”
재료 몇 개만으로 진미를 내놓는다는 설명이다. 베토벤 작품에 담긴 음악철학은 그 이상이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 나선 인간 내면에 집중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노래한 거죠. 곡도 세밀하게 썼습니다. 악보에 ‘약하게’ ‘강하게’ 등 지시문이 촘촘히 박혀 있어요.”
김선욱은 2006년 리즈콩쿠르 우승 이후 2009년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전곡을 협연했다. 2012~2013년에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완주했다. 독일 본에 있는 ‘베토벤 하우스’ 멘토링 프로그램 첫 수혜자로 선정돼 친필 악보 등 소장품을 독점으로 열람할 수 있는 자격도 얻었다.
베토벤에 몰두한 이유는 뭘까. 슈베르트, 리스트 등 베토벤을 이어 명곡을 남긴 낭만주의 작곡가도 많다. “베토벤은 처음으로 제게 음악의 힘을 일깨워준 작곡가입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이상을 제시해 준 은인이죠.”
그가 꼽은 베토벤 명곡은 네 가지. 베토벤의 ‘현악4중주 12번’, 피아노 소나타 21번’(발트슈타인), ‘교향곡 9번’ 그리고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피아니스트로서 가장 선호하는 작품으론 발트슈타인을 꼽았다. “발트슈타인 악보를 보면 몸이 들썩거립니다. 8분음표 8개가 들어간 서두부터 남다릅니다. ‘이런 박자에 곡을 어떻게 쓰지?’란 질문이 절로 듭니다. 사람 마음 홀리는 데 탁월한 작곡가인 거죠.”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