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누가 밀레니얼의 기회를 뺏어 갔을까

입력 2020-12-09 17:52
수정 2020-12-10 00:27
“OK, 부머(Boomer).” 미국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부머는 1946~1964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말한다. 우리말로 하면 ‘아재’와 비슷하다. 친구가 재미없는 구식 농담을 했을 때 놀리는 비속어로 보면 된다.

미국에선 아재 세대인 부머가 대부분 은퇴했다. 그리고 23~38세의 밀레니얼 세대(1982~1996년 출생)가 주류가 됐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밀레니얼 세대는 7210만 명으로, 부머(7160만 명)와 X세대(1965~1981년 출생, 6250만 명)를 넘어섰다.

밀레니얼은 정보기술(IT)과 함께 성장한 세대다. 어릴 때부터 공부와 숙제, 놀이와 소통까지 컴퓨터와 모바일, 소셜미디어로 해결해왔다. 교육 수준이 높고, 정치적으로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짙다. 결혼을 기피하고 혼자 사는 사람도 많다. 이들의 등장은 주거형태 변화와 혁신기술 확산, 직업과 소비 변화 등 사회 전반에 급속한 전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올해 터진 코로나19 사태는 그런 변화를 가속화했다. 향후 10년에 걸쳐 일어날 변화가 올 한 해 일어났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금융시장이 대표적이다. 지난 3월 코로나 사태가 터진 뒤 월가가 하락장을 경고할 때 밀레니얼은 로빈후드로 대표되는 무료 주식거래 앱을 통해 주식 시장에 대거 진입했다. 그리고 테슬라 줌 비욘드미트 엣시 등 이른바 ‘밀레니얼 주식’을 적극 매수했다. GM 대신 테슬라를 타고, 맥도날드 대신 비욘드미트를 먹는 이들로선 당연했다.

기술주는 폭등했다.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페이스북 등 다섯 개 주식이 뉴욕증시 시가총액의 25%를 차지할 정도다. 줌이 엑슨모빌 시총을 넘어섰고, 스노플레이크란 신생 클라우드 관련 기업이 IBM보다 커졌다. 최근 붐을 이루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도 밀레니얼 성향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밀레니얼의 부상은 미국 금융시장을 기술과 미래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한국의 인구 구조는 미국과 다르다. 1980년부터 2000년대 초반 태어난 밀레니얼은 그전 X세대에 비해 훨씬 적다. 급격한 출산율 저하 탓이다. 젊은 세대의 사회적 영향력이 낮다는 뜻도 된다.

재계에선 이재용 정의선 구광모 등 40~50대가 전면 등장하는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지만, 정치권은 ‘586’이 여당을 점유하고 있다. 이들은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통과시키는 등 미래보다 과거에 골몰해 있다. 야당은 80대인 김종인 위원장이 이끈다. 중앙행정조직엔 40대 기관장이 한 명도 없을 정도다. 금융계에선 68세인 이동걸 산업은행장이 재선임됐고, 70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3년째 재임 중이다. 연륜은 많지만 변화를 주도할 도전정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 현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정년은 연장되고 노조의 힘이 커지며, 기업들의 청년 고용이 대폭 줄었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이후 민간기업의 정년 연장 대상자가 100명 늘어날 때 청년 고용은 평균 22.1명 줄었다. 그런데도 정년을 65세로 연장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한국의 밀레니얼은 사회를 주도하기는커녕 취업도 못하고 있다. 사회를 바꿀 기회가 아니라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미래 세대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한국은 세계적인 변화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