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윈 퓰너 "공정경제3법, 도대체 누구에게 공정한가"

입력 2020-12-08 13:52
수정 2020-12-08 14:07


“공정경제3법(기업규제3법)과 노동법, 증세 정책이 한국 경제 발목을 잡을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8일 공개한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 재단 창립자 겸 아시아연구센터 회장(사진)과의 서면 인터뷰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퓰너 회장은 1941년생으로 1973년 미국 공화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헤리티지재단을 공동 설립했다. 헤리티지재단은 미국 민주당의 브루킹스연구소와 함께 미국의 양대 씽크탱크로 꼽힌다. "공정경제법? 누구에게 공정? "최근 도입이 급속도로 논의되고 있는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통합감독법 개정안 등 이른바 '공정경제3법(기업규제 3법)'에 대해 퓰너 회장은 “이 법안을 공정경제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해의 소지(misleading)가 있다"며 "누구에게 공정하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Fair to whom? I must ask)”고 했다. 이어 “결국 행동주의 펀드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외이사를 이사회에 앉히려는 공격적인 시도를 할 때 기업의 방어 능력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경제단체들이 꾸준히 제기했던 지적과 비슷한 맥락이다.

퓰러 회장은 “‘공정성’과 ‘기업 감독 선진화’를 명분으로 한 이 개정안은 한국의 민간 부문과 기업의 근간에 득보다 실을 더 많이 안겨줄 것(more harm than good)"이라며 "정부 주도의 법적 절차를 통해 기업을 규제하는 또 다른 형태가 될 것(another form of regulating business)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노조 정치화 심화시키는 현정부 노조정책"노동이사제 도입 등 현 정부의 노조정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정책효과를 얻지 못하고 노조 정치화가 심화될 것”이란 지적이었다. 노동이사제는 상장기업 사외이사 중 한 명을 노동자 대표가 추천하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공공기관위원회가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퓰너 회장은 “자유는 다른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시장에서도 필수적(Freedom is just as essential in the labor market as it is in any other market)”이라고 강조했다.

증세부담이 한국의 장기적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퓰너 회장은 “한국은 수년간 법인세와 양도소득세가 오르는 가운데 조세 부담률도 18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로 치솟았다"고 지적했다. 헤리티지 재단이 발표하는 경제자유도 지표에 따르면 한국의 조세부담(Tax Burden) 자유도는 2018년 73.3점에서 20년 63.9점으로 급감했다. 그는“대기업에 대한 조세의존도가 높은 불균형적 과세 체계는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악화됐다"며 "이런 체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국가의 장기적 경쟁력에 이롭지도 않다(neither sustainable nor beneficial)”고 강조했다.

퓰너 회장은 “한국의 최고 개인소득세율은 42%에서 내년 45%로 OECD 평균인 약 35%를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인상될 예정”이라며 "이번 세율 인상은 한국 경제의 가장 생산적이고 성공적인 집단에 더 큰 세부담을 안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자유롭고 활력 있는 한국경제를 촉진한다는 차원에서 볼때 잘못된 방향으로의 움직임(moves in the wrong direction)”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혁신경쟁에서 한국은 뒤처치고 있다 그는 세계 주요국의 혁신 경쟁에서도 한국은 뒤처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규제개혁에 대해 퓰너 회장은 “기업자유도 항목은 규제완화 과정의 폭과 깊이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측정하기 때문에 규제개혁의 속도와 강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헤리티지 재단 경제자유도 지수 중 '기업자유도' 항목에서 2013년~2014년 높은 점수(92.8~93.6)를 기록하다가 올해 들어 90.5점으로 고꾸라졌다. 퓰너 회장은 "수년간 규제개혁 성과를 낸 나라가 많았지만 한국은 개혁 레이스에서 뒤처졌다"고 평가했다.

성장산업에 대기업이 참여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규제가 대표적인 혁신저하 사례로 꼽혔다. 퓰너 회장은 "자율주행 전기차나 혁신의약품 등 벤처기업 혼자만의 힘으로 개발하거나 상용화할 수 없는 혁신 사업 영역에 대기업의 참여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싸워야 할 포식자로서만 대기업을 대한다면 혁신은 물거품이 될 것(innovation will dry up)”이라고 강조했다.

경제 자유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퓰너 회장은 법치주의 원칙과 경제에 대한 정부 개입 제한을 우선으로 제시했다. 규정이 명확하고, 범위는 제한적이며 예측 가능한(limited, defined, predictable) 정부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는 “최근 한국은 정부재정지출 관리 등의 부문에서 실망스런 성과로 인해 높은 수준의 개방 시스템을 갖춘 한국 경제의 잠재적 이익이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