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하시겠습니까?”
웹브라우저를 열어놓고 일을 하던 중 팝업창이 하나 튀어나왔다. 올해 말 지원이 끝나는 ‘어도비 플래시 플레이어(플래시)’ 삭제를 안내하는 내용이었다.
플래시는 웹브라우저에서 음악,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구동하는 용도의 소프트웨어다. 1996년 처음 등장한 이후 제작이 쉽고 작은 용량으로 영상을 재생할 수 있어 세계적으로 널리 쓰였다. 국내에선 초고속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홈페이지 제작에 많이 활용됐다. 당시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던 ‘졸라맨’ ‘마시마로’ ‘우비소년’ 같은 애니메이션과 ‘캔디크러시’를 비롯한 게임들이 플래시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2000년대 초중반은 그야말로 플래시 전성시대였다. 인터넷 전성시대 연 플래시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플래시를 싫어했다. 애플은 2007년 첫 아이폰을 내놓을 때부터 모바일 운영체제(OS) iOS에서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았다. 잡스는 2010년 자사 웹사이트에 ‘플래시에 대한 생각(Thoughts on Flash)’이란 글을 올렸다. 잡스는 “플래시가 보안상 기술적 약점을 갖고 있다”며 “모바일 기기에서 성능이 떨어지고 배터리 수명을 고갈시킨다”고 비판했다. 어도비는 며칠 뒤 ‘우리는 애플을 사랑해요(WE♥APPLE)’란 제목의 광고를 게재해 반격에 나서기도 했다. 어도비는 “우리는 웹에서 어떻게 창조하고 경험할지 선택할 자유를 빼앗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애플을 꼬집었다.
두 회사의 악연도 영향이 있다. 양사는 1980년대부터 끈끈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어도비가 애플에 독점 제공하던 포토샵을 윈도용으로 개발하면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어도비로선 윈도의 시장 점유율이 높았던 만큼 당연한 일이었지만 가뜩이나 사세가 기울던 애플은 “배신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도비가 영상 편집 프로그램 ‘프리미어’를 맥OS용으로 내지 않으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분노한 잡스는 소프트웨어 ‘파이널컷 프로’를 사들여 맥OS의 간판 영상 편집 솔루션으로 삼았다.
플래시를 두고 애플과 어도비가 설전을 벌일 당시엔 애플에 대한 비판이 우세했다. 아이폰 사용자는 플래시로 구동되는 웹사이트를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잡스의 말이 맞았다. PC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플래시는 스마트폰이 활성화되면서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중앙처리장치(CPU)를 많이 활용하는 플래시 특성상 전원이 연결된 PC에선 별문제가 없었지만 모바일 환경에선 배터리 소모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모바일 시대 뒤처지고 보안 문제도더 큰 문제는 보안이었다. 플래시는 ‘액티브엑스(ActiveX)’와 마찬가지로 웹브라우저에 부가 기능을 제공하기 위한 플러그인 형태로 만들어졌다. 플러그인은 상대적으로 보안에 취약하다. 플래시를 통해 컴퓨터 바이러스가 퍼지는 일이 빈번했다. 특히 악성코드로 컴퓨터 파일을 못 쓰게 하고 돈을 요구하는 ‘랜섬웨어’ 유포 경로로 플래시가 이용되면서 문제가 커졌다. 결국 어도비는 2017년 7월 플래시의 업데이트 및 배포를 2020년 12월 31일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플래시는 떠나지만 과제는 아직 남아 있다. 웹의 이곳저곳에 잔존하는 플래시를 걷어내는 일이다. 수명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정부 조사에 따르면 민간 500대 웹사이트 중 142곳이 플래시를 쓰고 있었다. 규모가 작은 사이트일수록 플래시 의존도는 더 높다. 특히 교육, 영상 관련 사이트 상당수가 플래시를 쓰는 실정이다.
지원이 끝난다는 것은 플래시의 보안 취약점이 새로 발견되더라도 이를 보완하는 업데이트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부가 비상대응반을 꾸리고 전용 백신을 개발하겠다고 나섰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플래시를 없애는 것뿐이다. 이용자로선 업데이트 확인이 필수다. 대부분 웹브라우저는 업데이트를 통해 플래시를 삭제하고 있다. 플래시가 나오지 않는다고 구형 인터넷익스플로러(IE)를 켜는 일만은 피하자. 이런 사람을 노린 악성코드가 새롭게 배포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즐거웠고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 굿바이 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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