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쌓인 한을 풀어내는 무대였다. 중간 휴식도 없이 110분 동안 소리꾼들은 관객들의 체증을 대신 풀어주려는 듯 혼신을 다해 울부짖었다. 지난 3일부터 막이 오른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공연(사진)을 통해서다.
작품은 2016년 초연됐다. 기원전 4세기께 에우리피데스가 쓴 비극과 판소리를 엮었다. 명창 안숙선이 작창을 맡았다. 그가 다진 토대 위에 배삼식 작가가 노랫말을 얹었다. 옹켕센 연출가가 군더더기 없이 주제의식을 간명하게 표현했고, 영화 ‘기생충’의 음악감독 정재일이 창과 어우러지는 음악을 선보였다.
무대에는 신전을 본뜬 흰색 구조물 하나만 올라왔다. 관객들이 판소리에만 몰입하도록 무대를 짠 것이다. 동선부터 의상, 소품, 장식에서 군더더기를 뺐다. 설명은 미디어 아트가 대체했다. 구조물에 영상을 투사했다. 그런데도 분위기를 설명했고 감정을 고조시켰다.
노련한 단원들 연기도 백미였다. 트로이 왕비 헤큐바역을 맡은 김금미는 2시간 가까이 절규했지만 끝까지 힘을 잃지 않았다. 다른 장르에선 이야기를 전개하는 도구에 그치는 코러스도 한 구절씩 창으로 소화했다. 기본기가 탄탄한 국립창극단 역량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옥에 티는 극장. 500여 석 규모 달오름극장은 넘치는 성량을 모두 담아내지 못했다. 미리 녹음된 배경음과 코러스 합창이 겹치는 장면에선 음량 조절에 실패했다. 미디어아트를 연출할 때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다. 극에 몰입했던 관객들은 탄식을 뱉었다.
좋은 음식을 담아낼 그릇도 중요하다. 2016년 초연에 이어 재공연을 달오름극장에서 열었다. 옷이 명품이라도 사이즈에 맞게 입어야 한다. 1000석 규모 해오름극장은 아직 공사 중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