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문재인 케어’라는 이름으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추진하면서 도움이 절실한 중증 질환자들은 건보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 등 중증 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신약에 대한 건보 적용 승인 비율이 문재인 케어 시행 이후 크게 떨어졌다. 초음파와 자기공명영상(MRI) 등 진단과 관련된 건보 혜택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토막 난 중증질환 보험 혜택6일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증 질환에 대한 건보 적용 확대율이 문재인 케어 시행 이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중증질환심의위원회를 열고 항암제 등 중증 질환에 사용되는 약제의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 건강보험 적용 과정에서 효과가 확인된 경우에는 확대 적용 여부도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가 시행된 2018년 이후 확대 적용 비율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2016년 95.0%, 2017년 75.8%였던 해당 비율이 2018년 38.3%로 급락한 이후 올해까지 40%대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신약 비율이 줄어들면서 중증 질환자들은 한 해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이 넘는 약값을 부담하고 있다. 2017년부터 건보 적용 확대 대상에 올랐지만 중증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가 대표적이다. 폐암 등에서 높은 효과가 입증됐고 일본과 유럽 등 대부분의 공적 보험 적용 대상이지만 한국에서는 척추 등으로 전이된 일부에 대해서만 건보 적용이 이뤄진다.
한 폐암 환자 가족은 “3주에 한 번씩 660만원을 부담해야 해 올해만 20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썼다”며 “정작 어려운 이들을 외면하는 문재인 케어는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한 정책일 뿐”이라고 말했다.
건보 적용에서 제외되는 약도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치매 치료제인 콜린알포세레이트는 본인 부담률을 80%까지 끌어올리기로 방침을 정했다가 제약사들의 소송으로 적용이 연기되고 있다. 복지부는 앞으로도 효과가 낮은 것으로 입증되는 약에 대한 건보 적용을 줄여 나갈 계획이다. 건보 적용 ‘가성비’ 따졌나이 같은 복지부 및 유관 기관의 움직임은 문재인 케어를 시행하며 건보 적용을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는 흐름과 상반된다. 정부는 2018년부터 초음파와 MRI는 물론 2~3인 병실 입원 등도 건보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며 관련 혜택을 늘리고 있다. 의약계의 반대에도 일부 한방 첩약 및 추나요법 등에도 건보를 적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2016년 3조원 이상의 흑자를 나타냈던 건보 재정 수지는 지난해 2조8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는 1조3000억원의 적자를 낼 전망이다.
전봉민 의원은 “정부가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며 건보 혜택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중증 환자들은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며 “가능한 적은 비용을 들여 더 많은 이들에게 생색을 낼 수 있는 항목을 중심으로 문재인 케어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증 질환 약제에 대한 건보 보장을 확대하면 약제 하나당 2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 관계자는 “비율이 낮아진 것은 2017년부터 중증질환심의위원회에 올라오는 후보 약제가 급증했기 때문”이라며 “건보의 약제비 지출은 소폭이나마 증가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보는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험인 만큼 중증 질환자에게 혜택을 집중하는 것보다 수혜 국민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한 민간보험사 관계사는 “건강한 직장인이 10~20년간 입원 한 번 하지 않으면서도 건강보험료를 내는 이유는 큰 병에 걸렸을 때 혜택을 받기 위한 것”이라며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반박했다. 4대 중증 질환에 집중했던 박근혜 정부 등 이전 정부에서는 중증 질환자 및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건보 혜택을 확대해왔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