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이번에야말로 잡히겠지 했는데 집값은 연일 고공 행진이다. 집값 상승은 도무지 멈출 기미도 없이 서울 강남과 강북,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도처에서 벌어진다. 집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양극화뿐 아니라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 월세입자와 전세입자의 고민 등 이전에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이 불거져 사회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최장수였던 국토교통부 장관이 교체되고 여당의 지지율이 최저치로 떨어지는 상황까지….
부동산을 둘러싼 문제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요즘처럼 만나는 이마다 부동산에 관심을 드러내는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그때 무리해서라도 집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단순히 투자 기회를 놓친 데 대한 억울함만이 아니다. 이제 평생을 일해도 내 집을 가질 수 없다는 불안함과 ‘영끌’이라도 해서 집을 사야 한다는 조급함도 보인다. 부동산과 관련한 공포가 우리 사회를 뒤덮은 것이다. 인간은 왜 이렇게 집에 집착하는 걸까. 집이란 생존을 유지하게 하는 장소였고, 그래서 이에 대한 소유본능 때문일 것이다. 나만의 공간과 내 소유의 집에 대한 집착은 비단 한국 사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동아프리카의 고고학 유적지를 살펴본 결과 200만 년 전부터 인류의 조상들은 ‘생활터전’ 또는 ‘본거지’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석재 도구를 만들고 고기를 먹으며 야생 동물에 대한 포획 전략을 세웠다. 본거지는 인류가 수렵 채집을 한 이후 동물로부터 피신해 포획한 음식을 나누러 돌아오는 곳이기도 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인간은 포식동물의 공격에 대비하고,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잘 수 있는 특정한 장소를 마련해야 했다. 이런 생존의 필요성에 따라 인류는 ‘집’이라는 안정된 장소를 만들었고, 집과 관련된 본능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지금의 집과 같은 개념이 처음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는 때는 로마 시대라고 한다. 진흙과 나뭇가지로 지은 로마 시대의 집은 현대의 집, 즉 거주지로써의 목적뿐만 아니라 심리적 애착과 개인적 의미를 지니는 집의 기초가 됐다.
현대인은 집이라는 장소를 생각할 때 흔히 행복, 소속감, 책임감, 자기표현 등을 함께 떠올리곤 한다.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일 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서비스와 공간을 제공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나타내고 표현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즐거움을 나누며, 자신의 의견과 행동 및 기분을 인정받는 곳이다. 현대사회에 들어 집을 소유하면서 집과 관련된 외부적 이익이 발생하는 ‘집 소유 효과(homeownership effect)’가 나타났다. 거주 관련 변수의 통제로 인한 심리적 안정 외에 ‘어디서 사는가’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 계층의 표현, 집과 자녀 교육 간 관련성에 대한 인식도 생겨났다. 한국에서는 이로 인한 이득·투자 효과도 크게 작용한다.
내 집을 소유하려는 것은 인간의 생존본능이다. 의식주의 ‘주’가 흔들리는 것은 식량 문제와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현상이다. 생존에 대한 위협은 저소득층과 고령층 같은 취약계층에 더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집값 상승으로 인한 내 집 마련의 어려움은 취약계층에 더 큰 위험 요소다. 영국 런던에서 이뤄진 주택 소유 여부에 따른 우울증 연구에 의하면 세입자는 우울증이 더 심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집이 있는 사람들은 스트레스 수준이 낮고 우울 증상을 보이는 확률도 떨어지는 등 정신건강 상태가 더 나은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고령층에서 더 두드러졌다. 더욱이 집은 물리적 안정성뿐 아니라 자율성 지속성 통제력 지위 등 존재적 안정성을 충족해준다. 이와 관련된 ‘안전한 피난처 가설(safe-haven hypothesis)’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사생활을 지켜주고 안전한 장소인 피난처(haven)로 보며, 이를 통해 자율성과 통제력을 느낀다고 본다. 집을 소유하는 것은 더 높은 자아존중감과 자기지배력,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젊은 층까지, 심지어 집을 소유한 이들조차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지금 상황은 분명 건강하지 않다. 사회 전체가 집을 둘러싼 갈등과 불안으로 들끓는 이때, 어떤 해결책이 가능할지 막막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