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각 중단해야" 대검의 '재판부 사찰 문건' 의혹에 판사들 줄비판

입력 2020-12-04 19:44
수정 2020-12-04 19:46

대검찰청이 판사들의 재판 진행방식과 성향 등을 분석한 문건과 관련 판사들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봉수(47·사법연수원 31기)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망 '이프로스'에 쓴 글에서 "지금까지 관행처럼 재판부 판사 개인정보를 수집해왔다면 지금이라도 중단해주기 바란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봉수 부장판사는 "재판장에 관한 정보수집은 가능하다"면서도 "그 주체는 어디까지나 공판검사여야 하고 정보수집 범위도 공소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로 제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판장의 종교·출신 학교·출신 지역·취미·특정 연구회 가입 여부 등 사적인 정보는 공소 유지와 관련이 없다"며 "형사절차에서 이런 사적 정보들을 참고했을 때와 참고하지 않을 때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판사에 관한 사적인 정보수집은 부정한 목적을 위해 활용할 의도가 아니라면 무의미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민감한 정보는 법령에 특별한 근거가 없으면 함부로 처리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중대 범죄행위"라고 덧붙였다.

김성훈(48·28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역시 게시글을 통해 "현 상황에 법관대표회의 또는 법원행정처의 적절한 의견 표명, 검찰의 책임 있는 해명,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적 조치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성훈 부장판사는 특히 문건 내용에 특정 판사가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에 포함됐다는 내용 등이 담긴 것을 두고 "이런 내용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서 작성자가 어떤 경위로 알게 된 것인지, 수사기록에서 불법적으로 온 것인지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며 "판사 뒷조사 문건은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위험이 크다. 이에 관해 논하는 것은 재판 공정성·중립성에 해가 되지 않으며 더 큰 공익에 봉사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장창국 제주지법 부장판사는 지난달 25일과 이달 3일 두 차례 내부망에 글을 올려 법원행정처에 대응을 촉구하고 7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송경근 청주지법 부장판사도 전날 "법관대표회의가 독립성 침해 우려를 표명하고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원칙적인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신중론에 무게를 싣는 목소리도 있었다. 차기현(43·변호사시험 2회) 광주지법 판사는 법원 내부망 글에서 "최근 이슈가 그 실체에 비해서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다뤄지고 있는 사항인 만큼 공식 기구에서 의견이 수렴되는 과정을 차분히 지켜보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혹여라도 이 문제로 판사 사회에서까지 격한 대립이 발생하고 있고 조용하던 게시판이 갑자기 '달아오르고 있다'는 느낌으로 외부에 전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