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탈원전 피해 주민에 1600만원 받고 끝내라는 정부

입력 2020-12-03 14:21
수정 2020-12-03 15:01

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경제적인 피해를 본 원전 예정부지 주민들에게 '우회 보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원전 건설계획을 뒤집어놓고 보상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자 현금 보상 대신 수도세와 집 수리비 지원 등의 현물 보상을 제안한 것이다. 오락가락하는 정부 에너지정책에 따른 피해가 속출하자 정부가 '꼼수 지원'을 동원해 탈원전 반대 여론을 무마시키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실과 천지원전생존권대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당초 천지원전이 건설될 예정이었던 경북 영덕 지역 주민들에게 가구 당 1600만원 상당의 생활개선지원비 지급을 제안했다. 영덕군엔 2029년까지 신규 원전 2기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하면서 건설 계획이 백지화됐다.


2012년 전원개발사업 예정구역으로 지정고시돼 재산권 행사 권한을 잃었던 해당 지역 주민들은 원전 건설이 무산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제8차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천지원전 건설계획을 백지화한 뒤 해당 지역 주민(영덕군 석리·노물리·매정리)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상의무에 관해 두 차례 법리검토를 받았다. 법률사무소 김앤장과 법무법인 평원의 법리검토에 따르면 현행 법령 아래에선 피해보상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 정책 변경과 주민들의 경제적·정신적 피해 간 인과관계는 인정되지만, 이를 금전적으로 보상할 수 있는 근거법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의 항의와 논란은 계속됐다. 이에 정부는 사회갈등연구소에 '에너지전환정책에 따른 지역생활환경 개선 실태조사'를 의뢰해 우회적인 지원근거를 마련했다. 집 수리비와 함께 전기요금, 수도료 등 공공요금 지원 방식을 보상 방안으로 제시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는 없지만 실거주 주민의 생활안정과 공동체 회복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지원 근거가 되는 용역조사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정부 측이 제시한 1600만원이 실제 받은 피해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액수인 데다 지급 시점까지 미뤄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영찬 영덕군 석리 이장은 "정부는 법적 근거도 없는 것을 주는 거니 대승적으로 받고 끝내라고 말하고 있다"며 "8년 동안 토지를 묶어놓고 집 수리도 못하게 해놓고 '받을래 말래'라고 압박하는 태도"라고 말했다. 고시기간 동안 주민들은 땅을 매매하고 개간하거나 집을 고치는 등의 재산권 행사가 제한됐다. 발전소와 송전탑 등을 건설하기 위해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이 근거였다. 한때 관심을 받으며 '원전 특수'를 누렸던 영덕군 경제는 현 정부의 탈원전 추진 이후 고꾸라졌다.

'백년대계'여야 할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이 순식간에 뒤집히면서 지역경제가 타격을 입고 마을공동체가 해체됐지만 정부가 제대로 된 해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탈원전 반대 여론을 잠재우는 데만 신경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의원은 "오락가락하는 정책에 직접적인 피해를 본 국민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자 용역보고서를 만들어 꼼수지원하려는 게 현 정부 정책의 민낯"이라며 "탈원전이 얼마나 졸속으로 추진되며 지역사회에 상처를 남겼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