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 달걀'이 뭐길래…마켓컬리의 항변 [팩트체크]

입력 2020-12-03 10:57
수정 2020-12-03 11:23

"시름시름 아픈 돼지를 '무항생제 고기'로 만들겠다고 주사 처방 한번 안하는 게 동물복지인가요? 하루면 나을 질병을 10일 넘게 아프게 내버려두는 게 정말 그 동물이 행복한 삶입니까."

"자연방사 유정란은 닭이 마음껏 돌아다니다 달걀을 여기저기 낳는다는 점에서 동물복지일 수 있지만 그만큼 달걀 자체가 오염원에 노출될 확률이 높습니다."

프리미엄 식품을 엄선해 판매해온 장보기 앱 마켓컬리가 'A4 용지보다 작은 닭장에서 낳은 달걀을 팔았다'며 환경단체의 공격을 받자 내놓은 항변이다. 문제의 시작은 달걀 껍질에 쓰여진 10자리 숫자 중 마지막 숫자 4. 환경단체는 왜 숫자 4에 민감하게 반응한 걸까. 살충제 계란파동 후 달걀 껍질에 새겨진 '10자리 숫자' 작년 2월부터 달걀 껍질에는 10자리 계란 생산정보가 적혔다. 정부가 살충제 계란 파동 후 의무화했다. 이 중 산란일자(4자리), 생산자고유번호(5자리)에 이어 마지막 숫자는 사육환경 번호를 의미한다.

사육환경번호는 1~4번으로 구성된다. 1번은 닭을 풀어서 키우는 방사, 2번은 케이지와 축사를 자유롭게 다니는 평사, 3번은 개선된 케이지, 4번은 일반 케이지다. 이 중 4번에 해당하는 케이지 사육은 통상적으로 비좁은 케이지에서 비위생적으로 닭을 키우는 곳을 생각하기 쉽다.

'4번 달걀'을 판매해 논란에 휩싸인 마켓컬리의 해명은 이렇다.

"과학적으로 설계한 스마트팜은 내부 온도, 일조량, 습도,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농도 등을 체계적으로 조절한다. 닭이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은 단순히 면적뿐 아니라 지내는 환경, 위생, 먹이 등의 영향도 크게 작용하는 점을 고려해 스마트팜은 쾌적한 사육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건강한 달걀을 생산해낸다. 1, 2번 달걀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유통과정 등에서 쉽게 문제가 생긴다.스마트팜의 달걀은 균일한 품질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숫자의 함정, 밀집사육은 무조건 나쁜가 마켓컬리가 공격을 받은 건 사육공간이 좁은 '4번 달걀'을 판매하면서 닭이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는 환경이라고 적은 것 때문이다. 흔히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닭은 스트레스가 많고 지저분하게 자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스마트팜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면 이는 잘못된 주장이라고 마켓컬리는 반박했다.

잘 관리된 스마트팜은 사람 대신 컴퓨터가 닭을 사육하고 관리한다. 좁은 케이지에 다닥다닥 닭을 집어넣어 기르는 농장과는 다르다. 케이지 안에서 실시간 닭의 몸무게와 건강 상태를 측정하고 이에 맞는 사료를 준다. 무균 상태의 최적의 조건으로 자라기 때문에 달걀의 품질, 위생 상태가 뛰어나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한국의 스마트팜에서 생산한 달걀은 세계적으로도 위생 관리와 품질을 인정 받아 수출되기도 했다. 한 달걀 스마트팜 회사는 올해 싱가포르, 홍콩 등으로 신선란을 대량 수출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는 그러나 "동물복지가 철저히 무시된 케이지 달걀 판매는 윤리적 생산과 소비를 지향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스마트팜 등 사육방식 다양성 인정해야 마켓컬리는 "스마트팜 케이지에서 자란 4번 달걀은 항생제, 성장촉진제가 첨가되지 않은 달걀로 식물성 단백질 등 영양 성분이 뛰어난 사료를 먹고 자란 닭이 낳은 달걀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일반 달걀 대비 비타민E 합유량이 5배 이상 높고,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최고 등급인 1+ 등급을 받은 달걀"이라고 강조했다.

한 양계업체 관계자는 "4번이 찍혀 있다고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며 "어떤 환경에서 어떤 먹이를 먹고 자랐는 지, 선별과 유통 과정이 얼마나 위생적으로 이뤄지는 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계란을 식품관점에서 보면 난각번호 1, 2번인 동물복지 농장계란이 꼭 좋은 품질의 계란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히려 자연방사의 계란의 경우 외부 환경에 노출이 잘 되고, 개체별 관리가 쉽지 않아 꼼꼼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질병 등에 취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외에서도 동물복지 차원에서 '케이지 프리'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 등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가 여전히 케이지 사육을 중심으로 운영한다. 미국, 캐나다, 일본, 러시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은 케이지의 비율이 80~90% 이상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등도 50~70%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