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돈벌이 된다"…자존심 버리고 태세 전환한 디올 [김정은의 명품이야기]

입력 2020-12-05 10:00
수정 2020-12-05 12:00
프랑스 명품업체 크리스티앙 디올의 '레이디 디올백'. 최근 또 가격이 올라 620만원에 달할 만큼 고가이지만 국내에서 결혼용 예물백으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가방은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살아 생전 자주 착용했던 클래식한 디자인의 핸드백이다.

디올은 여성스럽고 우아함을 앞세운 브랜드다. 루이비통이나 에르메스, 샤넬, 구찌 등 승승장구하는 다른 명품 업체들과는 대조적으로 그동안 조용한 행보를 보여왔다. 그랬던 디올이 최근 몇 년 전부터 분주하다. 유통 방식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 단연 적극적이다. 중국인들을 위해서라면 현지화에 주저하지 않는 등 중국 시장을 겨냥한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디올이 과감해졌다. 중국 향한 디올의 끝없는 구애 8360만명. 디올이 2021년 봄·여름 콜렉션에서 온라인 프로모션을 통해 동원한 중국 소비자들의 규모다. 디올은 최근 개최된 연례 행사인 싱글스데이 쇼핑 페스티벌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지난 10월13일엔 디올의 공식 위챗 계정을 통해 한정판 상품을 잇달아 선보였다. 글로벌 명품업체가 중국에서 온라인 쇼핑 이벤트 전용 콜렉션을 출시한 것은 디올이 처음이었다.

사실 디올이 중국에 '구애'를 보낸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2015년 디올은 명품업계 최초로 모바일 메신저 위챗에서 한정판 레이디 디올백을 판매했는데 2만8000위안이었던 이 가방은 하루 만에 품절됐다. 특히 위챗페이를 통한 간편결제 시스템을 제공했고, 디올의 중국 공식 홈페이지에는 알리페이 결제 시스템을 지원하는 등 중국 맞춤형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는 정성까지 보였다.

자신감을 얻은 디올은 2018년 위챗에서 명품업계 최초로 라이브스트리밍 방송을 시작했고, 같은 해 명품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동영상 플랫폼인 더우인(틱톡)에 공식 계정을 만들었다. 최근엔 중국의 밀레니얼 세대들이 많이 하는 '중국판 유튜브'격인 빌리빌리까지 진출했으며 지난 6월엔 티몰에 공식 입점했다. 다만 티몰에선 화장품과 향수 등만 판매하고 있다. 디올은 중국에서 그 어떤 글로벌 기업보다 적극적이고 전방위적인 디지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제품에도 '중국 패치'를 했다. 지난 5월 디올은 중국 소비자들이 핸드백에 이름 등 한자를 새길 수 있는 토트백과 디올캠프 핸드백을 중국 한정판으로 선보였다. 또 디올이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는 디올옴므 점퍼는 5540위안(840달러)이지만 매일 15.18위안(2.40달러)씩 결제하는 방식으로 구매할 수 있다. "12개월 동안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명품 잠바"라는 게 디올 측의 설명다.

이 같은 중국을 향한 구애는 곧 실적으로 이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올해 상반기 크리스티앙 디올 그룹은 216억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한 것이다. 명품 전문매체 징데일리는 "디올에게 중국은 돈벌이, 즉 캐시카우가 되는 시장"이라면서 "디올은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데 그 어떤 명품 브랜드보다 가장 적극적이다"고 보도했다. 회장 딸이 힘 실어주는 디올 디올은 1947년 설립된 프랑스의 최고급 명품 브랜드다. 코코 샤넬과 어깨를 견주었던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이 설립했다. 주력 분야는 잡화와 화장품, 옷 등이다. 디올은 LVMH(루이비통모엣헤네시) 그룹에 속해 있다. 베르나르 아르노가 설립한 세계 최대 명품기업인 LVMH는 루이비통, 디올, 지방시 등 75개의 명품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으며 파리 증시 시가총액 1위다.

현재 루이비통 부사장으로 근무 중인 베르나르 회장의 큰 딸인 델핀 아르노의 디올 사랑은 업계에 잘 알려져 있다. 델핀 아르노는 2001년 디올 집행위원회에 합류했다. 2008년엔 디올 부사장에 임명돼 2013년 8월까지 부사장으로 재직하다 루이비통으로 자리를 옮겼다.

디올은 10여 년간 본인이 직접 관여한 브랜드인 만큼 애정이 각별한 데다 디올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신속한 의사 결정에도 적극적이다. 베르나르 회장 역시 장녀 델핀을 크게 신뢰해 디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근 지난 3분기 실적을 공개한 LVMH그룹에서 효자 역할을 한 것은 디올과 루이비통이었다. 특히 패션&가방 부문은 루이비통과 디올을 중심으로 사업부문 중 유일하게 매출이 늘며 전체 매출의 약 50%를 차지했다. 3분기 LVMH의 아시아 지역 매출은 전년보다 13% 늘었다. 이같은 선전 덕분에 LVMH는 3분기 만에 두 자릿수 매출 하락세를 벗어났다.

증권업계는 코로나19 이후에 실적이 더 좋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행이 재개되면 면세 수요가 회복되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이 임박했다는 소식도 호재다. 특히 디지털 전환에 적극적인 디올은 만약 코로나19가 장기화되더라도 온라인 채널을 기반으로 견고한 실적을 낼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LVMH는 오프라인 매장 폐점에도 온라인 부문에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며 3분기 119억6000만유로의 매출을 냈다. 작년 동기보다 10% 가량 줄었지만 2분기에 비해서는 53.3% 증가했다. 자존심 버리고 사과도 재빨리 디올은 이처럼 중국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이 같은 노력이 자칫 물거품이 될 뻔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디올이 중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턴십 프로그램 '드림 인 디올' 현장에서 대만이 표기되지 않은 중국 지도를 사용했다가 격노한 중국인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던 것이다.

현장에 있던 중국인 학생은 "왜 중국 지도에 대만이 빠져 있느냐"고 질문했고, 이에 디올 측은 "지도가 너무 작아 대만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질문을 던진 학생이 재차 "대만보다 큰 하이난섬은 보인다"라고 반문하면서 현장 직원들이 진땀을 뺐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소셜미디어는 들끓었다. 의도적으로 대만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라는 비난이 폭주하자 디올 측은 다음날 새벽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 사과 성명을 게재했다. 신속한 대처였다.

디올은 성명에서 "(대만이 빠진 건) 직원의 실수"라면서 "우리는 항상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준수하고 있으며, 중국의 주권과 영토 보존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라고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이어 "디올은 중국의 친구이며 14억 중국인들의 신중국 건국 70주년을 축하한다"라고 덧붙였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