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권 광주요 회장 "물·불·흙·바람의 조화가 가마터의 조건…사람이 살아가는 법과 꼭 닮지 않았나요"

입력 2020-12-03 17:58
수정 2020-12-04 10:56

경기 이천시 수광리 야트막한 산자락 끝에 붉은 점토를 바른 가마 12칸이 계단식으로 줄지어 있다. 등록문화재(제657호)로 지정된 수광리 오름가마다. 맞은편 현대 양식의 단층 건물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려청자의 옥빛을 재현한 청자가 빛을 발한다. 나무에 피는 연꽃을 형상화한 목부용문이 새겨진 그릇과 보름달처럼 하얗고 둥근 모양의 달항아리가 유려한 곡선을 뽐내고 있다. 이곳은 한국의 대표적인 자기업체 광주요의 역사를 담은 ‘광주요 문화관’이다. 전통의 문화가 숨 쉬는 곳조태권 광주요 회장은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면 항상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광주요 창업자인 선친 고(故) 조소수 선생이 1963년 사라져가던 한국 고유의 도자기 문화를 살리고자 광주요를 세운 그 자리다. 설립 초기에 만들었던 1대 제품부터 도자기 제작 도구까지 광주요의 57년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천은 왕실에 자기를 납품하던 광주관요의 이천 분원이 있던 자기 문화의 중심지다. 광주요 이천점에 있는 문화관은 1949년 지어져 근대식 장작 가마의 초기 양식을 보여주는 오름가마를 품고 있다. 조소수 선생은 1963년 오름가마가 있는 이곳을 찾아 일제강점기 문화말살 정책으로 명맥이 끊어진 한국 도자기를 재현하는 곳으로 낙점했다. 이천 수광리 오름가마 앞에 선 조 회장은 “아버지가 생전에 가마 옆에 앉아 불의 세기를 조절하며 저를 바라보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 오름가마는 12칸 가마가 하나로 연결된 구조로 불이 밑에서부터 올라가며 완성된다. 조 회장은 “자기를 만드는 건 한 가지 물질로 각기 다른 색을 내는 예술”이라며 “자기에 유약을 바른 뒤 이 가마 안에서 산소를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색이 바뀐다”고 설명했다.

창업 초기엔 이 가마 12칸 가운데 5개를 주로 사용해 자기를 생산했다. 지금은 실제 생산에는 사용하지 않지만 전통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1988년 광주요 대표가 된 조 회장이 사업을 도자기에서 주류, 식당으로 확장하기로 한 것도 주로 이 자리에서였다고 한다.

“도자기는 음식을 빛나게 해주는 옷입니다. 음식의 성격에 어울리는 자기에 담아야 맛과 멋이 살아납니다. 음식에 도자기라는 옷을 입혔다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반주죠. 음식과 도자기, 술을 함께 연계한 한국의 식문화를 구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공간은 조화의 미학”도요지(가마터)는 물(水), 불(火), 흙(土), 바람(風)으로 도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곳이다. 태토(도자기를 만들기 위한 바탕흙)를 비롯해 물과 불을 위한 나무가 풍부하고 환경이 조화로워야 한다. 이런 조건과 환경이 한데 어우러진 가운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양각색의 도기가 탄생한다.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 회장은 “가마터는 디자인, 인문학, 역사학을 비롯해 건축학까지 반영된 통합적인 문화 공간”이라고 했다.

조 회장의 공간 철학에는 이 같은 가마터의 원리가 깔려 있다. ‘공간은 조화의 미학’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다양한 삶의 요소와 문화를 한데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광주요가 한식을 새롭게 재해석해 문을 연 식당 ‘가온’과 ‘비채나’에도 이런 철학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가온과 비채나는 2017년부터 내년까지 5년 연속 미쉐린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곳으로 유명하다. 그는 “광주요 이천센터를 장기적으로 세계에서 도자기를 빚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문화를 공유하며 제작도 함께하는 중심지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천=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