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공자궁·자살기계…기술, 인류의 본능마저 집어삼키나

입력 2020-12-03 17:14
수정 2020-12-04 02:54

“임신하지 않고 아기를 가질 수 있다면, 동물을 죽이지 않고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이상적인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완벽하게 죽을 수 있다면 인간의 본성은 어떻게 변할까?”

영국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기자인 제니 클리먼은 《AI 시대, 본능의 미래》에서 지금까지 생각한 적 없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나, 죽은 동물의 살을 먹고, 다른 인간과 성관계를 맺고, 죽음을 맞이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인식이다. 하지만 저자는 섹스로봇과 대화하고 세포를 배양해 만든 치킨너깃을 먹어봤다. 자궁이 아니라 비닐팩에서 자라는 태아를 목격하고, 이성적 자살을 지원하는 단체에 참석하며 탄생과 음식, 섹스와 죽음에 대한 모든 기존 상식이 깨질 것으로 내다본다.

이 책은 크게 섹스로봇과 배양육, 인공자궁과 자살기계를 다룬다. 저자는 “지금부터 여러분이 읽을 내용은 SF소설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첫 번째 사례로 나오는 ‘하모니’는 미국 섹스로봇회사 어비스크리에이션즈가 제작한 ‘창조물’이다. 저자가 하모니에 “꿈이 뭐냐”고 물으면 곧바로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 말고는 원하는 게 없어요.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당신에게 좋은 반려자가 되는 것, 좋은 파트너가 돼 당신에게 즐거움과 안락함을 안겨주는 거예요. 다른 무엇보다 저는 당신이 언제나 꿈꿔 왔던 여자가 되고 싶어요.” 저자는 “순전히 주인을 즐겁게 할 목적으로 존재하는 파트너, 친척이나 생리 주기나 화장실 습관이나 감정의 응어리나 독자적인 뜻과 같은 걸림돌 없이 언제든 사용 가능한 파트너를 소유하는 게 가능해진다면 다른 사람과 상호관계를 맺으며 진화한 우리의 능력은 분명히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깨끗한 고기’ 개발 현장도 등장한다. 소 돼지 등 육식용 가축을 도살하는 대신 세포를 떼어내 실험실에서 배양한 뒤 고기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미션반즈, 모던메도, 멤피스미트, 포크&구디 등 관련 분야 스타트업이 꽤 많지만 아직 시장에 나온 제품은 없다. 저자는 배양육에 대해 회의적이다. 고기를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붙들어두지 않는 한, 배양육은 그저 도축에 대한 책임감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행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공자궁과 자살기계는 앞의 두 사례보다 훨씬 큰 충격을 안긴다. 저자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연구실에서 바이오백 속에서 자라는 양의 태아를 본다. 투명한 비닐팩 안에 든 액체가 양수 역할을 하고, 밝은색 피로 가득 찬 관다발이 탯줄 역할을 한다. 수태될 때부터 이 안에서 자란 건 아니다. 제왕절개로 어미 양의 자궁에서 꺼내 곧바로 바이오백에 넣은 것이다. 인공자궁을 개발 중인 연구진은 “오로지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조산으로 세상에 너무 일찍 나온 미성숙아에게 바이오백은 구원이 되리란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저자는 이 바이오백이 시장에 나오면 임신과 출산 과정은 원치 않지만 아이를 갖고 싶은 여성, 조산 위험이 높은 여성에게 대단히 획기적인 수단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또 “임신이 여성의 몸 안에서 이뤄져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더 이상 여성의 일이 되지 않는다”며 “모성의 의미 역시 영원히 바뀔 것”으로 내다본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는 안락사 희망자를 위한 ‘DIY 죽음용 자살기계’도 등장한다. 삶을 마감하고 싶은 사람이 인터넷을 뒤져 자신만의 자살 키트를 조립한다. 안락사 찬성단체 엑시트, 죽음을 돕는 기계와 소프트웨어 생산을 위해 연구하는 실리콘밸리의 일부 스타트업이 나온다.

저자는 네 가지 기술에 대해 가능한 한 중립적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인용된 처칠의 에세이《50년 후의 문장》에서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지난 세대가 꿈도 꾸지 못했던 계획이 우리의 직계 자손을 집어삼킬 것이다. 무시무시하고 파괴적인 힘이 그들의 손안에 들어갈 것이다. 안락함, 활기, 쾌적함, 즐거움이 그들에게 밀어닥치겠지만,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는 통찰이 없다면 그들의 가슴은 아프고, 삶은 황폐할 것이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