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45조7000억원(8.9%) 늘어난 558조원으로 확정됐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예산 증가율(5.8%)을 훌쩍 웃도는 ‘초확장 예산’이다. 특히 국회 심사 과정에서 정부안보다 예산 규모가 2조2000억원 늘었다. 통상 국회에서 정부안이 감액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외에도 내년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 가릴 것 없이 ‘돈 풀기’에 몰두한 결과다. 실제 국회에서 증액된 사업을 보면 3~5세 누리과정 보육비 인상 등과 같은 ‘선심성’ 예산이 여럿 포함됐다. 정부안보다 2조2000억원 증가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여야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558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확정했다. 555조8000억원이던 정부안에서 7조5000억원을 증액하고 5조3000억원을 감액했다. 정부 예산안보다 2조2000억원 순증시킨 것이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국회 심사에서 규모가 커진 건 2010년 예산 이후 처음이다.
7조5000억원 증액은 △3차 긴급재난지원금 3조원 △코로나19 백신 확보 9000억원 △주거안정대책 7000억원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기반 조성 3000억원 △보육·돌봄 지원 3000억원 △일자리 유지·확충 지원 3000억원 등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3차 재난지원금이다. 코로나19 재확산을 감안해 소상공인·취약계층에 현금 지원을 하는 데 쓰인다. 하지만 누구에게 얼마를 줄지는 정하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가 내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원 대상을 확정짓기 어려웠던 탓이다. 다만 2차 재난지원금(7조6000억원)보다 예산이 절반 이상 줄었기 때문에 지원 대상도 적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한 예산도 9000억원 증액됐다. 3000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할 수 있는 규모다. 기존에 확보된 약 4000억원 예산까지 합치면 총 4400만 명에게 백신을 지원할 수 있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주거안정대책을 위한 증액도 7000억원 이뤄졌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공공전세주택 신규 도입 등 정책을 이행하기 위한 예산이다. 경영난으로 유·무급 휴가에 들어간 근로자를 위한 고용유지지원금 예산도 1816억원 늘었다. 지원 대상이 68만 명에서 78만 명으로 늘어난다. 국가채무비율 43.9%→47.3% ‘껑충’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과 직접 관련이 없거나 시급성이 떨어지는 증액 사업도 적지 않았다. 누리과정 보육료 지원 단가 인상(2621억원), 도시철도 노후 차량 교체(1100억원), 참전·무공 명예수당 인상(420억원),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 조성사업 지원 확대(30억원) 등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은 사회간접자본(SOC) 등 민생·지역 현안 대응 예산도 1조4000억원이나 됐다.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 챙기기가 상당수 반영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반대했던 가덕도신공항 연구용역비 예산(20억원)도 여야 뜻대로 관철됐다.
정부와 국회는 재정건전성을 감안해 정부 예산안에서 5조3000억원을 감액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 등으로부터 “부실 사업이 많다”는 지적을 받았던 한국판 뉴딜 예산(21조3000억원)은 6000억원 ‘찔끔’ 감액되는 데 그쳤다.
증액이 감액보다 큰 탓에 재정 적자와 나랏빚 확대가 불가피해졌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75조4000억원으로, 정부안(72조8000억원)보다 2조6000억원 늘었다. 국가채무도 정부안 952조5000억원에서 956조원으로, 3조5000억원 불어난다.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7.3%다. 정부안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2016~2018년 35.9~36.0%에 그쳤던 국가채무비율은 작년 37.7%, 올해 43.9% 등으로 치솟고 있다. 이런 추세면 내년엔 50%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산이 법정 시한 내 처리된 덕분에 내년 1월 1일부터 재정을 즉시 투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민준/구은서 기자 morandol@hankyung.com